2009년 2월. 법무부로 발령 났습니다. 검사장의 숨겨진 딸이냐는 축하인사를 받으며 출근하여, 전임자로부터 ‘전직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 결격사유 검토’ 파일을 인계받았지요.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안장 결격사유인 내란죄 등으로 실형 판결을 받은 전과가 있는데, 특별사면으로 결격사유가 해소되는지를 검토한 자료였습니다. 특별사면은 형 집행이 면제되는 효력이 있을 뿐 유죄 판결 자체를 지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안장 결격자임이 명확하고 법무부 역시 유권해석을 이미 그렇게 한 상황.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 바람이 반대로 거세게 불기 시작했고, 불행히도 제가 지뢰를 인계받은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결격사유가 해소되지 않는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공허했지요. 법무부 장관의 뜻은 확고했고, 그 뜻을 관철시킬 의지로 충만한 검사들과의 논쟁은 무의미했습니다. 법과 정의의 수호자여야 할 검사가 상급자의 주문에 따라 법률 해석을 뒤집을 수 있는 ‘영혼 없는 공무원’에 불과함을 깨달았던 그때의 자괴감을 잊지 못합니다.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주말.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는 다급한 연락을 받고 황급히 출근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으로 오해하고, 검사직을 걸고 문제 제기를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도, 왜 하필 내가 담당자일 때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한 후 또 다른 이유로 경악했던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2018년 9월 15일 서울 정동에서 만난 임은정 검사는 2012년 과거사사건 재심에서 ‘백지구형’을 하라는 상부 지시를 어기고 ‘무죄구형’을 한 후 겪은 일들과 검찰개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검찰이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으려면 위법한 명령을 내린 자와 기꺼이 굴종한 자들에게 책임을 반드시 물어 위법한 명령에 따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2009년 8월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후 장례 형식을 논의하는 국무회의. 법무부 장관이 노태우 전 대통령 문제에 대해 쐐기를 박으려는 듯 국가보안법 위반 면소판결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국립묘지 안장이 가능하듯 노태우 전 대통령도 안장이 가능하다는 발언을 굳이 했다고 하더군요. 어느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청구로 문제 발언이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행정안전부에서 그 발언을 삭제한 국무회의 회의록을 제공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법무부 장관의 해석 타당성은 차치하고 김 전 대통령의 장례 논의에서 가해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을 언급하는, 그 역사와 인간에 대한 무례가 참담했고, 국민들을 눈속임하려는 공직자들의 처신은 황당했지요. 그러나, 결국 저는 방관했고, 침묵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무총리실에서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해석 논란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전직 대통령은 무조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국가보훈처 소관인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할지, 여론의 주목을 피하기 위해 행안부 소관인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며 부칙으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슬쩍 개정할지를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소관 부처 관계자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회의 자리에 법무부 담당자로 저도 참석했습니다. 법 개정은 국회 소관인데, 해석 논란이 없어진다면 제가 더 이상 검사직을 걸 필요가 없겠다 싶어 함께 머리를 맞댔지요. 검사를 오래 하고 싶었으니까요. 부끄럽지만 저도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바람개비였습니다.

2011년 6월. 12·12 쿠데타 주역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 전 장군이 사망하자, 국립묘지 안장 여부를 두고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과거 행적, 사면받은 실형 전과 등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사실상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전초전이었으니까요. 국립묘지의 영예성에 비추어 비리 전과자의 안장은 이례적임에도 안장대상심의위원회 당연직 위원들이 있는 법무부, 행안부 등은 긴밀하게 움직였고, 민간심의위원들은 이에 반발하여 사퇴하는 등 일대 소동이 벌어져 언론에 보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제 담당은 아니었지만, 위원회에 대신 출석하여 안장 반대표를 던지고 사직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했었습니다. 안장 선례와 상식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니까요. 결국 상상만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 방관하고 침묵했습니다.

2012년 12월.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상급자의 위법한 지시에 맞서 무죄 구형을 강행하고 수뇌부를 향해 거듭 쓴소리를 하였더니, 정의롭다는 칭찬을 더러 듣고 있습니다. 제 부끄러움의 용량이 다 차, 더 이상 눌러 담을 수 없게 되어 넘쳐흐른 것뿐인데… 사정을 알지 못하는 분들의 과분한 칭찬은 듣기 괴롭기까지 합니다.

지난 연휴 기간, 광주를 지나다가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며, 제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고 사죄를 드렸습니다. 반성이란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영령들께 약속 드렸습니다. 이 부끄러움을 평생 간직하며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