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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작별할 수 없는 것

경향 신문 2021. 11. 25. 09:54

“내가,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 1948년 눈 내리는 제주, 국민학교 시절 언니랑 심부름 다녀오고 나니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던 날. 아버지, 어머니, 오빠, 여동생의 시신을 찾기 위해 운동장에 쓰러지고 포개진 사람들의 얼굴마다 눈송이를 닦아내는 동안 알게 된 것이 있다고 딸에게 말하는 엄마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이 차가워진다는 것. 맨뺨에 살얼음이 낀다는 것. 시신 위로 내린 눈은 녹지 않는다는 것. 그 당연하고 무서운 사실을 그날 똑똑히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엄마가 있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 아니냐고,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를 함께 읽은 친구가 말했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수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제주 4·3’을 다룬 이 소설에 끔찍하게 훼손된 육체들이 재현되었음에도, 한편의 아름다운 장시를 읽은 것 같았다고. 주인공이 눈보라를 헤치며 4·3사건의 생존자 가족이 있는 제주로 향하는 여정과, 그 여정에서 만나는 눈과 새에 대한 묘사가 소설의 절반가량 할애되어 있기 때문이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그린 전작 <소년이 온다>(창비, 2014)와 달리, 이 소설의 주인공 경하는 ‘제주 4·3’과 직접적인 연고가 없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것도, 가족친지가 희생자인 것도 아니다.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 제주로 가서 방치된 새를 살려달라는 친구 인선의 갑작스러운 부탁으로 제주로 떠나, 희생자의 이야기를 고통스럽게 마주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칠십 년 전 이 섬의 학교 운동장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덮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 지금 내 몸에 떨어지는 눈이 그것들이 아니란 법이 없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역사적 비극은 그것에 다가가는 길목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작고 연약한 존재들의 아름다움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역사를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소설이 아니라, ‘그 기억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를 질문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저께인 2021년 11월23일, 우리에게는 두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하고 민간인 학살을 명령한 독재자의 사망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의 법안소위 통과. 아직 국회 본회의의 최종처리를 남겨두고 있지만 ‘제주 4·3’을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확언한 2018년 대통령의 추념사 이후 삼 년 만의 성과다. 그러나 같은 날, 끝내 한마디 사과 없었던 독재자의 허무한 죽음과 조문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소동을 겪어야 했다.

소설의 한 구절을 빌리자면, 물은 사라지지 않고 순환한다. 1948년 겨울 제주에서 희생자의 얼굴 위에 떨어진 눈송이가 올해의 첫눈으로 내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역사에는 서로 무관한 것도, 끝내 종결되는 것도 없다. 사라지는 법 없이 언젠가는 여기로 되돌아온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1980년 5월 광주의 시신들뿐만이 아니며, 되살려야 하는 것은 1948년 제주의 유골 수백 구가 묻힌 구덩이만이 아니다. 우리가 작별할 수 없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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