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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송혁기의 책상물림

작심삼일

경향 신문 2020. 1. 15. 11:3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새해가 시작된 지 보름이 지났다. 이맘때마다 많이 들리는 성어가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새해의 시작을 맞아 운동, 금연, 외국어 공부 등 모처럼 작심한 일들이 며칠 가지 못해 흐지부지되고 만 데 대한 후회와 자괴의 마음이 전해지는 말이다.

작심삼일은 고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속담을 한문으로 옮긴 말이다. 사흘 고기 잡고 이틀 그물 말린다는 뜻의 ‘삼천타어(三天打魚) 양천쇄망(兩天쇄網)’이라는 중국어 표현, 머리 깎고 승려가 된 지 사흘 만에 못 견디고 환속한다는 뜻의 ‘삼일방주(三日坊主)’라는 일본어 표현 등이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는 한다. 하지만 작심삼일은 17세기부터 용례가 보이는 우리 고유의 성어다.

사실 어떤 목적을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는 뜻의 작심(作心)이라는 어휘 자체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흔히 쓰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결심(決心)이 더 일반적인 어휘다. 무언가가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의미의 “작어심(作於心)”이라는 구문은 많이 보인다. 맹자는 변론을 즐긴다는 비판에 대해 이단사설이 횡행하는 것을 막고 유가의 도를 계승하기 위해 부득이 변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맹자가 말하는 유가의 도는 요임금 때 범람하는 황하를 다스림으로써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든 데에서 출발한다. 홍수가 지나간 땅에 득실거리는 벌레와 도마뱀 따위를 몽둥이로 때려잡는 것을 표현한 글자가 개(改)이고, 그렇게 바로잡는 행위를 일반화한 글자가 정(政)이다. 환경을 바로잡고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정치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생각이 일을 그르치고 결국 정치를 그르치게 되므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라는 것이다.

작심삼일도 사흘마다 한 번씩 하면 된다는 말들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늘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그 역시 나쁘지 않겠다. 문제는 오히려 작심삼일이 두려워서 작심 자체를 안 하는 데에 있다. 성찰 없이는 작심도 없다. 끊임없는 성찰과 작심이 아니고는 우리의 삶도, 사회와 정치도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마음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가에 달렸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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