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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고 해서 들깨 타작을 서두르는 날이었다. 베어 놓은 지 4~5일 지났는지라 잘 말라서 ‘가빠’를 깔고 한 곳으로 모으는데 따가운 햇살이 새삼 고마웠다. 들깨를 벨 때는 이슬이 덜 깬 이른 오전이 좋지만 타작하기에는 햇살 따가운 오후가 좋다.

옮기기 좋게끔 반 아름 정도씩 끌어모으는 때도 그렇고 그걸 양팔에 안고 올 때도 그렇다. 무척 조심스럽다. 깨알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니까 충격이 가지 않도록 걸음도 사뿐히 걷는다. 내려놓을 때는 반대다. 소리 나게 턱 내려놓는다. 한 알이라도 털어지라고.

들깨를 벨 때도 조심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낫을 예리하게 갈아서 들깨 밑동에 댄 채로 비스듬히 당겨 올려야 깨알이 떨어지지 않는다. 충격이 가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이보다 더 조심하는 단계가 있다. 들깨 베는 날과 시간을 정하는 때다.

적어도 닷새 정도는 날이 맑을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어야 하고 참새 떼 눈치를 봐야 한다. 기민하고 주의 깊게 살펴서 밭에 들어가는 순간을 정해야 한다.

들깨가 익으면 참새 떼가 귀신처럼 알고는 몰려든다. 익지 않은 들깨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들깨 뿌릴 때도 들켰다가는 다시 뿌려야 할 정도로 참새는 들깨를 좋아한다.

애써 농사지어서 참새들에게 빼앗길 수는 없다. 속 편한 말로 들짐승이나 날짐승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들깨 밭의 참새는 다르다. 이놈들이 쪼아 먹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데 들깨 밭에 내려앉거나 날아가는 순간에 들깨가 우수수 떨어진다.

들깨 잎을 따서 반찬을 만들 때도 시퍼런 잎보다는 들깨가 익어가면서 깻잎이 노르스름해질 때가 좋지만 이때는 함부로 밭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곁을 돌면서 잎을 딴다. 하물며 사람조차 조심하는 이런 때에 참새는 거침이 없다.

참새들의 활동은 이른 아침부터 낮 동안 계속된다. 그래서 먼저 참새 떼가 밭에 날아 와 있는지를 보고 없으면 일을 시작하지만 참새 떼가 있으면 날아가기를 기다렸다가 베기 시작해야 한다. 불쑥 다가갔다가는 놀란 참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면서 들깨 손실이 크다.

올해는 맑은 날이 많아서 농사가 풍년이다. 들깨 알도 굵다. 자근자근 첫 번 털기에서 깨가 와르르 쏟아진다. 초벌 털기가 끝나면 다시 소리 나게 내리치는 두벌 털기를 한다. 들깨 더미를 옮겨 쌓으며 깨알은 자루에 담는다.

비 소식만 없다면 그냥 덮어 뒀다가 다음날 바람에 드리우겠지만 일단 자루에 담아 집으로 옮긴다. 들깨 자루는 가볍다. 물에도 뜨는 식물성 기름이 가득 차 있어서다. 쌀 20㎏짜리 마대에 가득 담아도 12~13㎏이 될까 말까다.

가을 해는 짧다. 어둑발이 내리는가 싶더니 가로등이 들어왔다. 들어와서는 안되는 가로등이다. 조금 남은 일거리는 불빛 없이도 얼마든지 마칠 수 있다. 지난여름에 가로등을 꺼 달라고 군청에 전화해서 겨우 꺼 놨는데 왜 가로등이 또 들어올까. 가로등은 해당 주민이 손댈 수 없게 되어 있다. 안전사고 때문이라고 한다. 농작물 피해로 가로등을 꺼야 할 때도 담당 관청에 연락해서 꺼 달라고 해야 한다.

인적조차 없는 시골길에 밤 내내 환한 가로등은 빛 공해다. 더구나 무와 배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데 가로등은 치명적이다. 쉬어야 하는 밤에 약한 빛이라도 있으면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하려고 시도한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쉬지 않고 일을 하면 스트레스 물질이 체내에 쌓인다.

가로등 불빛이 있는 쪽 콩이랑 들깨는 익어 갈 생각도 않고 만년 청년으로 살겠다는 듯 자라지도 않고 잎만 무성하기에 가로등에 적힌 대로 전화를 했더니 받지를 않았다.

평일 낮 시간만 통화가 된다는 걸 통화가 된 며칠 뒤에 알게 되었다. 이날도 늦었다. 어차피 다음날 전화해서 가로등을 꺼 달라고 해야 할 상황이다. 이렇게 가을날 하루가 저물었다.

전희식 | 농부· ‘소농은 혁명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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