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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전샌. 작년에 쌀값이 1할 빠지더니, 올해는 거기서 1할이 더 빠졌네. 그것도 농협에 낼 수나 있으면 다행이라고. 이제야 타작하는 게 시작인데. 어찌될지 몰라. 내가 전샌 앞에 두고 돈 치르는 얘기 말고 할 게 없네.”

괭이질해서 논두럭 올려붙이는 것, 논에 물길 내서 물 대고 빼는 것, 풀 맬 때 손 놀리는 것, 거름 장만해서 논에 넣는 것. 어느 것이든 하는 모양새가 엉성하다 싶으면 손수 해 보이시고, 일러 주시던 어르신이 경운기에 나락을 싣고 농협에 다녀와서는 기운이 없다.

수매를 마치고 온 이웃 어른이 한마디 덧붙였다.

지난 1일 오후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백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서울 종로구청 인근에 모여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 쌀이 남는다고. 농사짓는 땅을 버려. 쌀 남는 게 농사가 많아선가. 남의 양식 돈 내고 사다 먹는 일이 하, 언제까지고 그러겠나. 배 곯으면 양식 앞에 댈 게 없네. 지금이야 어디 농사 있는 집, 없는 집 할 것 없이 정지(부엌)에 외국산 잔뜩 재놓고 먹고 있지 않나. 그 사람들이 농사 망하믄 돈 주고도 못 사와. 여기 땅에서도 생전 안 난다던 지진이 나는데, 흉년 드는 거야 조석 드는 것처럼 오고 간다고.”

지난달, 이웃 지역 관청 앞에는 나락이 쏟아졌다. 짐칸 가득 나락을 싣고 온 트럭이 줄줄이 관청 마당에 들어섰다. 가마니를 째고 맨바닥에 나락을 쏟았다. 하루이틀 전 베어진 나락이 타고난 운명이란 것은 곳간 천장 닿을 듯이 쌓여서, 두고두고 한 해 먹을 양식이 되어야 했을 텐데. 흙바닥도 아닌 시멘트 위, 한데로 내동댕이쳐지듯 땅바닥에 쏟아졌다. 지나던 노인 안쓰럽게 보다가 저절로 손이 간다. “거, 참 나락 실하네.”

맨바닥에 나락이 쏟아진 다음, 봉홧불 이어가듯 들판 여기저기에서 소식이 들려왔다. 이삭마다 알알이 누런 벼, 손바닥에 놓고 슬슬 비비기만 해도 구수한 나락 냄새 나고 쌀알이 벗겨지는 벼들이 선 논에 트랙터가 들어섰다. 한 해 지낸 것을 고스란히 알곡에 담아 나올 날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질척한 논바닥에 벼 이삭이 고개를 처박았다. 논 주인이 트랙터에 올라 앉아 논바닥을 뒤집는 동안, 마을 어른들 논둑에 쭈그리고 앉아 말이 없다.

작년, 가뭄이 심했던 어느 모내기철에 물이 말라 쩍쩍 갈라진 논을 TV에서 보여준 적이 있다. 어린 모가 서 있는 꼴이 어디서 물만 끌어 올 수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두레질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여릿한 어린 모에 물을 댄다더니, 대통령이 한낮 땡볕 아래에서 소방차 호스를 붙들고는 앞뒤 없는 표정을 지은 채로 논바닥에 냅다 뚫어져라 물줄기를 쏘아대던 일이 있었다.

농사꾼이라면 누구든, 쓰러지고 뽑히는 모 한 포기 한 포기 때문에 더 쳐다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호스를 들고 있는 사람의 아무 표정도 없고, 걱정도 없어 보였던 얼굴 또한 쳐다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마 백남기 선생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선생은 그 물줄기에 내동댕이쳐졌다.

백남기 어른이 쓰러졌던 날은 선생이 밭에 밀을 갈고 이틀 후였다. 겨울 농사를 차근차근 챙겨 놓은 농사꾼 백남기는 더 이상 쌀, 값이 고꾸라져서는 안된다며 휘황한 도시 한복판, 젖은 길 위에 서 있었다. 선생의 말은 한 해가 지나 ‘거기서 1할이 더 빠진’ 쌀값 소식을 답으로 들어야 했다. 심지어 올해에는 다 익은 벼가 논바닥에 처박혔다는 이야기도 병실 안을 떠돌았을 것이다. 벼가 묻히고, 닷새가 지나 선생이 돌아가셨다.

시인 박형진이 농사 연장에 대해 책을 쓴 것이 있다. 낫을 두고는 “새벽 이슬에 젖은 연한 풀을 베는 낫은 짐승을 살리고, 땅을 기름지게 하고 …스르륵스르륵 벼를 베는 농부의 손에 들린 낫은 평화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연장이 제 쓰임대로 쓰이지 못하고, 낫을 든 농사꾼이 논밭에 있지 못했던 것처럼 농민이, 나라가 불행한 일도 없을 것이라는 말도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써 놓았다. 제 논을 꾹꾹 다 다져 밟은 트랙터는 아스팔트 길 위에 논흙을 떨구고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전광진 | 상추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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