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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가 다니고 있는, 면사무소 옆 초등학교에는 딸린 논이 있다. 지금껏 남아 있는 것이 두 도가리(배미). 서로 다른 마을에 있다. 학교에서는 제법 떨어져 있어서 어느 쪽이든 아이들 걸음으로 가자면 한 시간은 걸린다. 초등학교 재산 목록에 논이라니. “요즘이야 학교에 보탠다고 하면 장학금이니 지원금이니 돈으로 내지만, 예전에는 좀 여유있게 사는 집에서 땅을 내놓고는 했어요. 그러면 그 땅에서 나는 곡식으로 해마다 학교 살림을 살았지요.” 그렇게 해서 학교 땅이 된 논밭이 아직 남아 있기도 하다는 것. 이제는 농사지어서 거둘 수 있는 돈이라는 게 아주 형편없거니와, 땅을 빌려준다고 해도 마땅히 부쳐서 농사지을 사람도 없어서 아예 땅을 처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마을에서 그런 땅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동사(마을회관)를 지은 땅은 어느 집안에서 내어 놓은 땅이고, 할매들 여름날 더위 피하는 정자는 어느 집 몇 대 어른이 한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온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콩단을 세워 말리고, 오가는 차를 세워 두고 하는 땅은 지지난 이장을 하셨던 분의 땅이다. 마을 소유의 산도 있어서 그것은 해마다 누군가에게 빌려 주고 돈을 받아서 마을 살림에 보탠다.

예전부터 학교 땅이든, 마을 땅이든 다같이 쓰자고 재산을 내어 놓을 때에는 학교와 마을 살림이 짜임새 있게 굴러갈 수 있을 만한 것을 내어 놓았다. 그래야, 결국은 없이 사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곤궁함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전통이 아직 살아 있었던 수십년 전에도, “민정당 시절에 불우이웃 돕는다고 빈 라면박스를 어른 키만큼 쌓아 놓고 사진 찍던 것들” 또한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100년쯤 되었다. 100년을 버텨오던 그 사이에 이런 식으로 살림 밑천을 마련해서 학교를 꾸려왔을 것이다. 누구는 땅을 내어 놓고, 누구는 손공을 보태고 하던 그 방식은 마을 살림을 꾸려왔던 경험 그대로다. 지금도 여전히 마을마다 대동회를 하는데, 거기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물론 돈 얘기다. 마을 재산이 있고, 마을 살림이 있어서, 그것을 한 해 동안 어떻게 꾸려왔는지 하는 것을 더할 수 없이 격렬하게 논의한다. 마을 일에 쓸 것으로 새로 숟가락, 젓가락, 냄비, 그릇 따위를 마련했던 해에는 어느 집 물건이 싸니, 그것보다는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그 건너 집에서 사야 좋은 것을 오래 쓴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한창이었다. 덕분에 읍내 그릇가게들이 어떻게 장사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마을 살림살이를 넣어 둘 새 창고를 지을 때는 그야말로 몇 백만원 하는 돈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서 지을 수 있는 숱한 창고들이 사람들 이야기 속에서 지어졌다 헐리기를 되풀이했다. 마을에 재산을 내놓는 것이야 형편에 따라 다르지만, 살림을 사는 일에서는 너나없이 제집 살림처럼 달려든다. 땅이든 돈이든 많이 내어 놓았다고 유세를 떠는 일도 쉽게 보기 어렵다. 어쨌거나 마을 사람 모두가, 어디 허투루 돈 쓰인 데가 없는지 돋보기를 들이대고 내역서를 한 줄 한 줄 짚는 것이다. 그 와중에 무슨 일이든 혹여 어느 집에 손해가 가는 일이 없는지, 혼자 사는 할매, 형편 어려운 살림을 돌보지 않는 일이 없는지 따위를 살피는 것은 누구나 마음을 썼다.

지난 이화여대의 길고도 단호했던 싸움을 시작으로 온 나라가 촛불의 나라가 되었다. 읍내 터미널 앞 로터리에도 촛불을 든 손길이 있다. 거기에는 여러 바람들이 있겠지만, 마을 사람들이 마을 살림을 꾸려가는 것처럼, 나랏돈을 쓰는 살림이 허투루 돌아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바람도 있을 것이다.

부디, 이 모든 것들이 나랏돈을 제 돈처럼 쓰는 것에 익숙한 오래 묵은 모리배와 기업들을 단죄하기를 바라는 이 마음은, 결국에 숟가락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죽어가는 젊은이가 없게 하고, 검은 바다에 빠진 아이들에게 진실을 들려주어 위로하고, 트랙터를 끌고 온 나라를 떠도는 농민들이 제 땅에서 농사짓는 것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전광진 | 상추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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