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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그림 원고 뭉치를 받았다. 두툼한 파일로 몇 개. 10여년 동안 다달이 꼬박꼬박 연재되었던 그림이라고 했다.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시작해서 온갖 물고기, 짐승, 풀과 나무, 살림살이, 마을의 집들, 소리와 맛과 움직임을 나타내는 그림까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작은 그림 하나에 담겨 있었다. 단순하고 아름답고 유쾌했다. 그림 하나하나에는 우리말 이름이 붙어 있고, 그 아래에 일본어로 뜻과 우리말 소리가 적혀 있었다.

10월 초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린 ‘파주북소리’의 프로그램 가운데 홍영우 화가의 그림책 원화 전시회가 있었다. ‘온 겨레 어린이가 함께 보는 옛이야기’라는 주제로 10년 동안 그린, 20권의 그림책 완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홍영우 선생이 올 수 있었다. 모두들 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는데, 오셨다. 일본에서 조선적으로 살고 있는 선생은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다. 2010년에도 인사동에서 선생의 전시회가 있었지만, 그때는 오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는 별 어려움 없이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것이,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일본에서 조선적으로 살고 있는 재일동포 전체가 비슷한 처지다. 선생이 온 것은 예외적인 일이었고, 지금도 다른 조선적 재일동포의 한국 방문은 어렵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졌던 다른 일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많았지만, 이렇게 약하고 힘없는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은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

<우리말 도감>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던 원고 뭉치는 선생이 10년 동안 20권의 옛이야기 그림책을 그리기 전, 10년 동안에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선생의 손주들이 다니는 학교, 그러니까 우리학교(일본의 조선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에게 보이는 그림이었다. 우리학교의 유치원이나 초등 과정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처음 우리말을 배울 때 보는 그림. 쉽게 말한다면 낱말 그림책 같은 것. 이 아이들은 조선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일본말밖에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랬던 것이 학교에서 우리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초등 2, 3학년만 되어도 우리말로 이야기를 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 정도 시간에 외국어 하나를 배우는 셈이다. 바로 그동안에 아이들은 선생의 그림을 늘 옆구리에 끼고 지낸다.

여든을 바라보는 연세이신 선생은 꼬박 20년 동안, 손주뻘 되는 아이들에게 보일 그림을 그리는 일에 매달린 셈이다. 화가로서 선생의 작품인, ‘쇠장(소시장)’은 평양의 조선미술박물관에 국가보존작품으로 소장될 만큼 뛰어나다. 재일동포 화가의 대표격으로 국내에서도 따로 전시회가 열릴 만큼 우리나라 화단에도 선생의 그림은 알려져 있다. 그렇게 자기 그림을 줄곧 그려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할아버지가 된 선생이 그린 그림은 낱말책 그림, 옛이야기 그림 이런 것들이었다.

선생은 이 원고를 두고, 어떤 식으로든 우리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 손에 쥐여질 수 있다면, 그것 말고는 바람이 없다고 하셨다. 10년간 매달 연재된 그림은 일본에서 한 권 분량만이 책으로 나왔다. 그 몇 배가 넘는 나머지 그림들은 아직 나오지 못했다. 그 일을 부탁하고 가셨다. 요즘 일본의 우리학교 형편은 좋지 않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자면 아주 적은 돈을 써서 운영하는 학교다. 하지만 작년인가 다음 스토리 펀딩에서도 만날 수 있었던 조선학교 아이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유쾌하게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선생들도,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손주를 학교에 보내놓고 그 아이들을 위해 10년 동안 그림을 그리는 할아버지가 있었겠지. 그저 겉보기로는 그림책 몇 권을 내는 일로 보이는, 그러나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마음이 담기는 일을 맡게 됐다. 이 일만큼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을 요량이다. 벌써 어디어디, 누구누구 하는 식으로 머릿속에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다. 때마다 꺼내 보기 좋도록 손 닿는 자리에 그림들을 꽂아 두었다.

전광진 | 상추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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