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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가 미국 내에서 다시 확산하고 있다. 단지 아시아인처럼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길이나 마트에서 쌍욕을 듣고 주먹질을 당하고 짓밟히기도 한다. 아시아인을 향한 불편한 시선이 느껴지는 정도가 아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손흥민 선수마저도 “바이러스 아시아인, 개나 먹어라”와 같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듣고 있다.

작년 6월 퓨리서치센터가 미국 성인 96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로 미국 내 아시아인의 31%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경험했고, 26%는 누군가의 물리적 폭력이 두렵다고 답했다. 또한 미국인 10명 중 4명은 아시아계를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이 더 흔해졌다고 응답했다. 이 비율은 히스패닉이나 백인을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보다 두 배나 높고 흑인의 경우와 비교해서도 10% 정도 높은 수치다.

무릇 21세기 시민이라면 인종주의는 이미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어야 한다. 20세기 내내 인종차별이 얼마나 큰 재앙을 몰고 오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인종에 대한 편견이 왜 잘못된 생각인지를 가르치고 사회에서는 인종 혐오 범죄를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인종주의는 박멸되지 않았고 인간 무의식의 세계를 끝없이 배회하고 있다. 마침내 그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팬데믹이 어떻게 인종주의의 부활을 이끌었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전염병은 다른 질병과 뚜렷이 구별되는 속성을 지닌다. 그것은 병자에 대한 혐오와 공포심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배워서 그런 게 아니라 수렵채집기부터 진화한 ‘자연스러운’ 적응 기작이다. 감염자에 깊은 연민을 느껴 접촉한 이들은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지 못했기에 우리 조상일 수 없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면역력이 있었던 운 좋은 사람들이거나 감염자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무심한 자들이었다. 반면 암과 같은 질병에 걸린 친구를 떠올려보라. 연민이 일어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염병은 회피 심리를 이끌어내는 특별 변수다. 전염병이 우리 동네에 창궐하고 있다는 기사만 읽어도 우리는 감염자만이 아니라 외국인, 노인, 심지어 비만인에게까지 혐오감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자기 집단에 대한 충성심도 무의식적으로 올라가고 집단주의적 관념이 더 강력해진다. 이질성에 대한 민감도가 극도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부터 방심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 혐오는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용인될 수 있지’라고 추론하기 딱 좋다. 이것은 오류다.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해서 올바른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로부터 거짓말을 하는 행위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심지어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사실들이 나열되어도 사실 명제만으로는 그것이 좋거나 올바르다와 같은 가치 명제가 따라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과 가치와의 간극은 0과 1의 차이만큼 크다. 철학에서는 이것을 ‘자연주의 오류’라고 부른다.

혐오에 대한 용인은 논리적 오류만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는 사회적 오류이기도 하다. 에너지 섭취 효율이 높은 기작은 근근이 먹고 살던 수렵채집기에는 매우 적합한 특징이었지만, 고열량 음식이 널려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결코 적합하지 않다. 즉 오래된 진화의 산물이라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최적의 무엇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비만의 기작처럼 현재의 최악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수렵채집기의 전염병 상황에서 잘 통했던 혐오 전략은 현대의 다인종 사회를 붕괴시킬 시한폭탄으로 전락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본능대로 사는 것이 좋다’는 말은 규범이나 가치가 필요 없다는 것이고, 이것은 인류 문명의 방향을 거꾸로 돌리겠다는 오판이다.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를 멈춰라’라는 구호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라는 캠페인도 엊그제였다. 지금은 ‘인종에 대한 편견’이라는 이 몹쓸 자연스러움에 대항할 때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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