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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짐승들은 집에서

우두커니 세상을 바라보고

공사판 인부들도 집으로 간다

그것은 지구가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가 오면

마당의 빨래를 걷고

어머니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고

강을 건너던 날 낯선 마을의 불빛과

모르는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비는 안 가본 데가 없다

 

빗소리에 더러 소식을 전하던 그대는

어디서 세상을 건너는지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낡은 집 어디에선가

물 새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시도 그만 쉬어야 한다

이상국(194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비가 오면 벌여 놓거나 차려 놓은 것을 안으로 거둬들이게 된다. 비를 맞으면 안되는 것들은 치우거나 덮는다. 널어놓은 빨래는 거둬 안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바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잠시 일손을 놓는다. 누군가는 우산을 펼쳐 들고 식구를 마중 나가기도 한다. 비는 저 멀리서 이쪽으로 산등성이를 넘어 벌판을 지나 벌떼처럼 온다. 와서 새잎들을 두드리고, 연못을 두드리고, 장독을 두드리고, 지붕을 두드리고, 사람의 애틋한 심사(心思)를 두드린다. 봄비가 좀 넉넉하게 왔으면 좋겠다. 나도 짐승처럼 우두커니 서서 비 오는 바깥을 바라보고 싶다. 이따금 생각도 쉬어야 한다. 무엇보다 오던 비 그치면 봄 하늘이 보리밭처럼 푸르게 드러날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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