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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눈에 띄게 잦아지자 또다시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보수성향의 전문가와 정치인들 중심으로 “핵무기를 배치할수록 비핵화 협상력이 커진다” “사생결단을 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 “전술핵 전진 배치, 핵억지력 강화 방안이 비핵화 협상에 반영돼야 한다” “미국이 핵우산으로 한국을 보호해주겠느냐”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핵의 균형’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공론의 장으로 한층 나온 느낌이다.

핵무장은커녕 전술핵이라도 남한 내에 반입되면 북한 비핵화는 사실상 물 건너가고 덩달아 북한의 핵무장을 정당화하며 북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시킬 압박과 명분 역시 사라짐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게다가 전술핵이 들어오면 여섯 차례 핵실험으로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의 관에다 대못을 박는 셈이 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후과(後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중국의 군사적·경제적 위협과, 최악의 경우 단교(斷交)까지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학계, 정치권, 시민단체 등에서 전술핵 재반입을 공론화해 주길 제안한다. 전제가 있다. 주한미군(엄격히 말해 지상군) 철수와 연계하는 것이다. 넓게 보면 주한미군 철수는 진보진영의 비원(悲願)이었고, 전술핵 반입은 보수진영의 숙원(宿願)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과거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식으로 여러 차례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적정 수준의 미군이 전술핵을 통제할 경우 한국 자체 핵무장 욕구를 억지하는 효과는 분명 있다. 여기에다 근력을 키워 나가는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장사꾼 트럼프에게는 가성비가 높은 흥미로운 옵션일 수가 있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미군을 철수하고 핵무기를 전진배치하는 것은 중국과의 전면전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결기가 없는 한 불가능한 시나리오이긴 하다. 중국은 미군이 한반도에서 나갈 경우 쌍수를 들어 환영하겠지만 미군 철수에 따른 안보 공백을 채우기 위해 일례로 베이징과 거리가 불과 1000㎞ 이내인 군산 공군기지에 미국이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까지 용인할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1967년 한 해에만 남한에 미국 핵무기의 숫자가 무려 950기였다는 점을, 그리고 박정희가 닉슨의 괌 독트린(1965·7·25)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막고자 제주도를 핵무기 기지로 미국에 제공할 수도 있음을 제안(1969·10)한 역사적 사실들을 미국이 모를 리가 없다. 그린란드를 매입하겠다는, ‘트럼프가 있는 미국’과 ‘트럼프가 없는 미국’은 같은 미국이 아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프린터에 깊이 끼어있는 종이처럼 엉켜버린 상태에서 미국은 동북아시아 원 안에 ‘핵 보유국 북한’을 넣고 전략을 새롭게 짜고 있다. 문서상으로는 주한미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한국의 방위비분담금은 획기적으로 인상하고, 동시에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폐기에 따라 한국을 포함하여 동북아 지역 어디엔가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전략이다. 미국은 여러 선택 사항 중 경중(輕重)과 선후(先後)를 따진 후 우리의 급소를 찾아 치고 들어올 것이다. 그럴 경우 관건은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의 압력과 중국의 위협까지 동시에 감내할 여력이 있느냐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만드는 높은 파도는 ‘평화경제’의 성벽을 아무리 높이 쌓고, ‘우리민족끼리’의 해자(垓字)를 아무리 깊이 파도 성 안으로 넘쳐 들어오게 마련이다. 

막스 베버는 선(善)은 선에서만, 악(惡)은 악에서만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는 ‘정치적 어린아이’(political infant)라고 했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음은 동서고금의 불편한 진실이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자강(自强)과 균세(均勢)를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적 유아(幼兒)가 될지 아니면 정치적 거인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이병철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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