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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겁이 났다.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는 상당히, 어쩌면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던 정세균 총리 얘기를 떠올릴 때마다 아찔한 기분이었다.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는 몇 달 사이, 사소하고 당연한 일들이 엄청난 일이 됐다. 학교·도서관 가기,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술자리, 야구 관람, 결혼식, 해외여행은 더 이상 맘만 먹는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일상은 깨진 뒤에야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했던가. 

그나마 내 일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재택근무는 하지 못했지만 회사에서 나름의 ‘거리 두기’가 가능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내근을 하지 않으니, 다닥다닥 붙어 앉아 일을 하지 않아도 됐다. 출퇴근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긴 했지만, 지하철보다는 밀집도가 덜한 버스를 탔으니 마스크를 단단히 조이는 걸로 불안을 덜었다. 결제 버튼만 누르면 문 앞까지 필요한, 아니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까지 꼬박꼬박 날라다 주는 이들이 있으니 장보기도 문제없었다. 달라진 거라곤 모임이나 식사 자리가 없어졌다는 것, 여름휴가를 위해 일찌감치 끊어놓았던 비행기표를 취소한 것 정도이다.

대부분의 정규직 직장인들도 집에서 업무를 보면서 음식은 배달해 먹고, 택배로 물품을 받으면서 ‘집콕’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밀려드는 주문에 온라인 쇼핑업체는 특수를 누렸다. 업체는 배를 불렸지만 그사이 택배 노동자들은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사투를 벌였다. 거리 두기를 하지 못하는 이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일터에 나가야 하는 저임금 노동자들뿐이었다. 사람들이 외출을 줄이느라 생긴 ‘위험 지분’은 이들이 그대로 떠안았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3월, 새벽 배송에 투입됐던 ‘쿠팡맨’이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경북 청도대남병원 폐쇄병동에서는 환자를 돌보던 간병인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했다. 최근 집단감염이 발생한 경기 부천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작업복도 돌려 입었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배송·배달·돌봄서비스에 종사하는 특수고용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거리 두기, 선택의 여지 없이 

일터에 가는 저임금 노동자

‘위험의 지분’을 떠안은 이들 

계층 따라 다른 영향을 받는

‘코로나 격차’를 만들어낸 현실 

사회안전망이 필요한 이유다


전염병의 위협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를 가리지 않지만, 실제 피해는 온전히 갖지 못한 자들의 몫이다. 전문직, 관리직 등은 재택근무가 가능해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비교적 적다. 코로나19 전후 소득의 변화도 거의 없다. 하지만 취약계층은 일터에서도 거리 두기가 되지 않아 감염 위험에 노출되고, 일감이 없어 무급휴직을 하거나 실직 등의 이중고를 겪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계층과 지위에 따라 소득과 생활에 다른 영향을 받는 ‘코로나 디바이드’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데도 마돈나는 ‘차별 없는 코비드19’라는 말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영상을 올려 욕을 먹기도 했다. 그는 “코로나와 관련해 중요한 사실은 코로나가 당신이 얼마나 부자인지, 얼마나 유명한지, 어디에 사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등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코로나를 ‘위대한 평등 장치’라고 했다. 마돈나는 “우리는 모두 같은 배에 타고 있다”며 “배가 가라앉으면 우리는 함께 침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난 상황에 물색없이 호화로운 도피 생활을 올려 구설에 오른 이도 있다. 프랑스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가족과 함께 교외 별장에서 지내는 감상을 적은 ‘격리 일기’를 르몽드에 연재했다가 18세기 베르사유 트리아농궁에서 농부 흉내를 냈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떠오른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파올로 조르다노는 봉쇄령이 내려진 로마에서 쓴 에세이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에서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가려져 있던 진실을 대면하게 하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직시하게 하고, 현재에 부피를 다시 부여한다”고 했다. 

전염의 시대에 인류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공동 운명체지만, 같은 배에 타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전염병으로부터 모두가 거리 두기를 할 수 있으려면 사회안전망이 촘촘해야 한다. 코로나19 격차를 줄이려면 재난지원금, 고용안전, 소상공인을 위한 자금지원 등 위기 상황에 있는 국민을 위한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코로나19가 완전하게 종식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상을 되돌리기 위한 정부의 책임이 무겁다.

<이명희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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