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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정동칼럼]거악과의 싸움

경향 신문 2017. 3. 3. 10:43

권력층의 뇌물 사건을 다루는 도쿄지검 특수부는 그 수사가 엄정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정계, 재계의 거물급 인사라도 그 칼날을 피해나가기 어렵다고 한다. 10여년 전 삼성 X파일 녹취록을 보면 이건희 회장이 도쿄지검 특수부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대목이 나온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원래 이런 빛나는 전통을 가진 것은 아니다. 100년이 넘는 일본 검찰 역사에 기개 있는 검사가 가물에 콩 나듯 더러더러 나타났지만 대체로 검찰은 권력에 순응하고 있었다. 원래 일본은 학연, 지연이 강하게 작용하는 독특한 문화 때문에 부패가 많은 나라다. 과거 숱하게 벌어진 부패 사건에서 정·재계의 거물급은 권력을 이용해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곤 했다. 그래서 일본 검찰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1976년 터진 록히드 사건이 전기를 이루었다. 도쿄지검 특수부 검사들은 록히드에서 거액의 뇌물을 받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물고 늘어졌고, 결국 그를 구속시키는 개가를 올렸다. 다나카는 1, 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고 대법원에 상고하던 도중 세상을 떠났는데, 사후 대법원은 다나카의 유죄를 확정했다. 도쿄지검 특수부 출신으로서 검찰의 임무는 거악과 싸우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평생을 살았던 이토 시게키 전 검찰총장은 다나카 수뢰사건의 재판을 보면서 검찰의 자세에 관해 이런 명언을 남겼다.

“검찰은 늘 배 고프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사회를 감시하는 날카로운 눈을 잃어서는 안된다. 국민의 마음으로, 매와 같은 날카로운 눈으로 사회의 움직임, 경제의 흐름 등을 응시할 때 검찰이 맞붙어 싸워야 할 거악의 희미한 윤곽이 떠오를 것이다.”

일본만큼 부패가 많은 한국에서는 검찰이 거악과 싸운 기억이 별로 없다. 소악의 척결에는 유능하지만 거악과의 싸움을 번번이 기피해왔기 때문에 검찰은 온갖 경멸적 별명을 달고 살아왔다. 한국 검찰 중 이토 시게키와 같은 기개 있는 검사는 기억에 없고, 이런 명언을 남긴 검사는 기억난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은 성공한 쿠데타라도 처벌하려는 기개 있는 검사를 보고 싶어 한다.

나는 평생 거악과 싸우는 검사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최근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박영수 특검은 70일 동안 권력의 중추부에 메스를 갖다 대고 정계, 재계의 거물급들을 줄줄이 구속하는 개가를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을 수사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했다. 삼성 가문은 지금까지 수없이 법을 어겼으나 교묘히 법망을 벗어났는데, 최초로 총수가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 차례 대국민사과를 했고, 검찰 수사, 특검 수사를 받겠다고 약속해놓고도 한번도 수사받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에는 적반하장 전략으로 전환했다. 본인은 잘못한 게 없고 엮인 거라고 우긴다. 정말 잘못한 게 없다면 정규재와 인터뷰를 할 게 아니라 특검을 만나 억울함을 풀어야 할 것 아닌가. 대통령이 특검 수사 받을 날짜까지 정해놓고는 날짜가 새나갔다고 하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핑계로 도망갔다. 나는 법에는 문외한이지만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은 즐겨 읽는데, 범죄심리상 죄가 없는 억울한 사람은 절대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박영수 특검은 한국 검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런 훌륭한 특검은 당연히 임기 연장을 해줘야 하는데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거부해버렸다. 이건 입이 열 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고 역사에 오점을 남긴 것이다. 황 대행은 자신을 임명해준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 충성해야 할 국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비록 임기 연장을 해주지 않아 특검은 아쉽게 끝났으나 특검 이후 검찰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검찰 역사에서 박영수 특검은 분수령이 될 것이다. 나는 대다수 검사들의 정의감을 믿는다. 다만 수뇌부로 올라갈수록 정치적 고려를 하고, 출세를 생각하고, 노후안정을 도모하기 때문에 정의감을 버리고 명철보신 철학을 따르는 게 문제다.

대학 시절 친구들 만나러 서울대 법대를 가보면 ‘정의의 종’이 걸려 있었고, 그 밑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 이런 멋진 말이 쓰여 있었다. 지금 대통령 변호인단, 최순실 변호인단 중 내가 아는 사람들이 다수 있는데, 이들도 한때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저들의 상식이하 안하무인 행동을 보면 저러려고 법대 갔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거악과 싸우지는 못할망정 거악을 편들어서야 되겠는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다른 공부를 하든지, 공부 안 하고 말지, 이게 솔직한 느낌이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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