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점점 신문을 믿지 않게 되었다. 방송 뉴스도 쉽게 신뢰하지 않는다. 열흘 전 발표된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의 공동연구 결과는 참담하다. 우리나라 뉴스 신뢰도는 조사 대상 37개국 가운데 최하위였다. “거의 항상 대부분의 뉴스를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은 25%에 불과했다. 핀란드(62%)나 포르투갈(62%) 등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다. 우리나라는 지난해에도 꼴찌였다.

우리나라 뉴스가 오보투성이여서 못 믿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가짜뉴스의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비율은 61%로 나타났는데, 이는 브라질(85%), 포르투갈(71%) 등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불신과 불안의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뉴스가 거짓일 수도 있다는 의심보다는 그 뉴스를 만든 사람들이 “공정하지 않다”는 의심을 하는 것 같다. 언론사의 정파적 위치나 경제적 이해관계, 심지어 기자 개인의 불순한 사적 목적이 기사 안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뉴스가 설령 거짓은 아니더라도 일부만을 보여주는 반쪽짜리 거울이라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기자가 안 보거나 못 보는 세상이 너무 크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기자는 현상이나 사람을 관찰하고 취재하고 분석해서 기사를 쓴다. 잘못 볼 수도 있고 전문성이 떨어져서 꼼꼼한 분석에 실패할 수도 있다. 당연히 비판받을 일이지만, 용인할 만한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관찰하는 위치가 잘못되었다면?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보아도, 내리깐 눈에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뉴스 신뢰도 조사결과가 발표된 같은 날, 조선일보는 “느닷없는 부산~헬싱키 노선…국내 항공사들 뿔났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핀란드에서 항공 노선 신설을 발표한 것에 대한 일종의 ‘분석’ 기사였다. 국내 항공사들과 인천국제공항이 큰 손실을 입을 테지만 국익 대신 영남권 유권자를 염두에 둔 선심성 정책이라는 것이 요지였다. 이 기사에 부산 지역 주민들과 정치인, 그리고 언론이 ‘더 뿔났다’. 유럽을 가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낭비하며 인천공항을 거쳐야 하는 지역민의 불편은 안중에도 없는 편향된 기사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기사를 ‘가짜뉴스’라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오보도 아니다. 정부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언론사라서 문제인가? 감시와 비판이 언론의 사명이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그 또한 이해해줄 수도 있다. 정작 큰 문제는 언론사가 혹은 기자들이, 이 사건을 서울의 대기업 옥상에서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거기서 관찰하면 수도권 바깥은 보이지 않으며, 거대한 비행기에 가려 정작 그 안의 승객들은 보이지 않는다. 해당 기사에서 언급한 취재원은 “항공업계 관계자”, “한 대형 항공사 임원”, 그리고 항공산업을 연구하는 경영학과 교수였다. 인천공항까지 힘들게 가야 했던 연간 300만명의 동남권 지역 여행객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최근 서울시는 4개 버스 노선의 새벽 시간대 배차를 늘렸다. 새벽 노동자들을 꽉꽉 채워서 운행하던 노선들이다. 몇몇 기자들이 마치 새로운 사건이 생긴 듯 이 새벽 버스에 올라타 승객들의 애환과 사연을 취재했다. 수십년 동안 거기에 있었으나 기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꽤 오래전에는 기자들도 거의 매일 이들과 같은 버스를 탔다. 기자들이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출퇴근을 하던 그 시절에는 버스 노선의 문제, 기사들의 난폭운전, 버스회사 비리 등이 심심치 않게 사회면을 장식했었다. 기자 월급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생활수준이 오르자 승용차의 성능, 교통 체증, 휘발유 가격 같은 주제가 만원버스 이야기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 주요 언론사의 중견 기자들은 거의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정파적으로는 다양할지 몰라도 경제적, 문화적 수준과 배경이 비슷하다. 대기업과 노동자가 대립할 때 많은 언론이 은근슬쩍 기업 편을 드는 듯 보이는 것도 반드시 광고 수입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기업에 더 쉽게 감정이입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탓이 크다. 기자들 주변에는 비정규직 공장 노동자보다는 기업 임원이 더 많다. 수도권 밖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은 더더욱 만나기 어렵다. 서 있는 위치가 거의 거기서 거기다. 바라보는 지점도 큰 차이가 없다. 독자들이 언론을 외면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언론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간지나 텔레비전 뉴스 대신 유튜브를 보고 팟캐스트를 듣고 이상한 정보를 카톡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뉴스 신뢰도를 단박에 회복시키는 비법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기자들이 좀 움직였으면 좋겠다. 서 있는 자리를 옮겨야 달리 보인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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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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