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월호가 침몰하고 보름 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손팻말에는 “박근혜, 네가 책임져라”라고 적었다. 세월호 집회 때 “박근혜 퇴진” 구호가 나오면 시비가 붙곤 했다. 대통령에게 최종적 책임이 있다는 사람들과 슬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람들 사이의 다툼이었다. 하지만 2016년 촛불광장은 세월호 침몰이 그 누구도 아닌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박근혜의 책임이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지금 나라가 갈가리 찢겨 싸우고 있는 것도 바로 대통령에게 그 책임이 있다.

이런 적은 없었다. 해방 정국 찬탁과 반탁, 좌익과 우익 시위가 경쟁적으로 개최됐지만 정부가 수립되기 전의 일이다. 그 뒤로 대규모 시위는 정권을 향한 저항의 표현이었다. 정치권력은 공권력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성난 군중과 대결케 했지만 스스로가 대규모 군중을 조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권력이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살아있는 권력을 대신한 군중들이 그에 반대하는 군중들과 맞붙고 있다.

이런 적은 없었다. 수구와 진보가, 보수와 개혁이, 친여와 친야가 갈등하고 대립한 적은 있었어도 진보와 개혁과 민주세력이 이처럼 반목하고 불화한 일은 없었다. 김대중이냐, 백기완이냐를 두고 논쟁하고 NL이냐, PD냐를 놓고 다툰 적은 있었어도 일시적이거나 부분적이었다. 지금처럼 온 나라가 시끄럽게 끝이 안 보이도록 대결하고 적대하는 일은 없었다.

대통령 때문이다. 검찰도 조국도 아닌 대통령 때문에 나라가 갈가리 찢기고 있다. 대통령이 할 일을 국민에게 미뤄서다. 임명권자가 결단을 하지 않아서다. 검찰총장이 검찰개혁에 방해가 된다면 총장을 해임하고 정의부(Ministry of Justice, 법무부)의 수장이 정의 구현에 장애가 된다면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 윤석열을 택할 것인가, 조국을 택할 것인가 임명한 사람이 결단을 해야 한다.

촛불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되 촛불로 국정을 운영하려 해서는 안된다. 검찰개혁의 추동력을 국민으로부터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 이미 수많은 국민들이 투표로써 권력을 위임했다. 수임한 권력을 방기하고 국민 뒤에 숨으려 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은 이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이고 최고 권력자다. 검찰이라는 권력기관의 개혁은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자가 해야 하는 것이지 국민이 해야 할 일은 아니다.

국민들이 검찰청 앞에서 검찰개혁을 외치고 있다. 물론 국민들이 권력기관의 개혁과 해체를 요구한 일이 없지는 않다. 2008년 촛불시민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함께 KBS의 낙하산 사장 반대와 공영방송 수호를 외쳤으며 2013년에는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은 국정원의 해체를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지금과 다른 것은 대통령을 대신해 공영방송 수호와 국정원 해체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도 함께 퇴진할 것을 외쳤다는 데 있다.

대통령의 의지로도 할 수 없는 게 검찰개혁이라면, 검찰이 대통령도 어찌할 수 없는 권력기관이라면 국민들은 대통령을 선출할 것이 아니라 검찰총장을 선출해야 한다. 그러나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은 스스로의 인사권을 행사해 검찰총장을 임명하지 않았는가. 지금 서초동에서 국민들이 외치는 요구는 윤석열더러 스스로 물러나라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왜? 임명도 해임도 인사권자가 해야 할 일이지 국민이 대신해서 요구하는가.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윤석열이든, 조국이든 어느 한쪽의 인사가 잘못됐음을 인정해야 한다.

수개월째 조국사태에 모든 이슈가 묻히고 있다. 10월3일로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 파업이 100일이 됐고 10월5일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희망버스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의 김천 도로공사 본사 점거농성에 결합했다. 이틀 뒤면 삼성에서 노조를 설립하려다가 불법해고된 김용희씨의 강남역 고공농성이 100일째로 접어든다. 그러나 조국 관련 뉴스가 연일 언론을 도배하면서 노동자들의 목숨 건 생존권 투쟁은 외면당하고 있다. 10월6일엔 세월호 참사 2000일 추모제가 열려 전면 재수사를 촉구했지만 이곳도 조국사태란 블랙홀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부실수사, 편파수사의 책임은 온전히 검찰에 돌려졌고 청와대와 정부로 향했어야 할 진상규명 요구는 “검찰, 언론, 사법부를 바로잡고 나라도 바로 세우자”는 한 여당 의원의 촉구로 대체됐다.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친여와 친야가 교대로 광장을 점령하게 만든 책임, 지난 역사에서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에게 투표함으로써 정치적 이해를 함께해온 친구와 동지들이 서로 낯을 붉히며 반목하게 한 책임은 바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 정당의 대표가 아니라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태를 수습하라. 그것이 대통령의 할 일이다.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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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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