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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정동칼럼]대학 새내기들에게

경향 신문 2019. 3. 4. 14:38

자정이 넘으면 새날은 시작되지만, 실제로는 어둠이 가시고 동녘이 밝아올 때야말로 하루의 시작이다. 마찬가지다. 달력의 시작은 1월1일이지만, 겨울 추위가 어느 정도 기운을 잃고 푸릇푸릇한 빛이 많아져야 비로소 한 해의 시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새해의 아침은 그래서 3월이다. 동면하던 개구리가 긴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3월6일이다. 초목의 싹이 돋고 새로운 생명이 생긴다는 때이다. 마침 어제오늘은 기온이 많이 올라 벌써 봄기운이 완연하다.

3월이 되어야 한 해가 시작된다는 생각은 입학과 개학 때문이기도 하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새 학년을 시작해야 하고, 교과서의 첫 장을 펼쳐야 한다. 학생들에게만 중요한 때는 아니다. 아이를 처음 초등학교에 보내는 새내기 학부모들도, 대학생이 된 손주가 대견한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3월은 새로운 인생 주기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더러는 조바심 내면서, 혹은 뿌듯해하면서 3월의 시작을 직접 경험하거나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한다.

오늘, 50만이 넘는 대학 신입생들이 본격적인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곤 하지만 아직 캠퍼스는 새롭기 그지없다. 강의도, 점심도, 덜컥 주어진 휴식 시간도 아직은 어색할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은 20년 가까이 살던 지역이 아닌 낯선 동네에 와서 허둥대고 있을 것이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가벼운 흥분만큼이나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안고 있을 것이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매해 새내기 대학생들을 맞이했다. 여러 모습들을 보았고, 뿌듯한 적도 많았지만 실망스럽기도 했다. 잘 지내기를 기대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걱정과 불안이 컸다. 대학생들이 점점 똘똘하고 자신감 있어졌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고개를 돌리면 터무니없이 이기적이거나 미성숙한 ‘아이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새내기들이 4년 이상을 보내고 졸업을 했다. 경험상,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격려와 위로다. “잘될 거야” 한 마디로 충분한 경우가 의외로 많다.

50만명 가운데 자신이 애초에 원하던 대학과 학과에 입학한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대부분이 차선이나 차차선을 택했을 테고, 어떤 이는 개학 첫날인 오늘까지도 불만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잘될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시작’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순간만큼은 몸속 에너지가 모두 발휘되기를 희망한다. 어느 순간,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확신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가서 고민하라. 지금, 시작하는 순간은 열정적이어야 한다.

열정이 마냥 현실적으로 발현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대학생활을  취업을 위한 준비과정으로만 삼는 것은 불행하고 우울한 일이다. 대학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많은 경험을 하면 취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지만, 대학생활의 목표가 취업이라면 너무 서글프다. 지난 12년 학교생활을 마치 대학 합격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정의하고 강요했던 사회가 이제 막 캠퍼스에 발을 디딘 이에게 취업 준비를 시작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무엇을 할 것인가? 좋은 강의는 유튜브에도 많다. 인터넷에서 온갖 유용한 정보들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에는 사람이 있다. 교수의 강의와 토론이 있고,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비슷한 공부를 하는 또래 동료들이 있다. 그동안 암기하는 공부를 했다면 대학에서는 질문과 논쟁을 하고, 그동안 경쟁하는 법을 배웠다면, 대학에서는 협력하는 법을 배우기를 바란다. 협력은 집단의식을 고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내 주체가 정립하는 과정이다.

막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내 아버지는 멀리 보고 걷는 자가 똑바로 걷는다는 격언을 선물해 주셨다. 돌이켜보니 꼭 맞는 말은 아니었다. 조금 삐뚤빼뚤하더라도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며 걸어야 많이 보인다. 발밑의 궁금한 풀과 꽃도 눈에 들어온다. 호기심은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미덕이다. 새로운 환경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호기심은 창의력의 토양이 된다. 도전과 실패도 여기서 나온다. 대학교를 다니는 기간은 인생에서 실패가 용인되는 거의 유일한 시기다. 물론 이것저것 건드려보고 곧 싫증 내면서 포기하는 것을 실패로 낭만화하면 안되겠지만. 

3월의 힘과 ‘시작’의 에너지가 얼마나 오래갈지 미리 알기는 어렵다. 언젠가 과속방지턱을 만나거나 심지어 지쳐 널브러질 때가 올 것이다. 그래도 50만 대학 새내기들은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대학 시절은 아무 거나 해볼 수 있는 시기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시기이다. 모두에게 “잘될 거야”라는 격려를 보낸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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