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조국 사태’를 논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치평론가도 아니고 전공자도 아닙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 수도 없거니와 이미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지나칠 정도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셀 수도 없는 가짜뉴스 생산 공장장들과 평생을 사익 추구에만 혈안이 되었던 자들이 보여주는 새롭지 않은 패악질은 도를 넘었습니다. 정책 검증, 능력 검증은 뒷전이고 주요 지면 대부분을 할애해 가족과 관련된 온갖 설들을 만들어내는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무조건 감싸기’ 혹은 ‘무조건 공격하기’로 일관성을 유지하는 분들의 고집스러움과 구태의연한 흑백논리, 진영논리 또한 지겨움을 넘어선 지 오랩니다.

다만 이 시점에서 정권의 초심을 환기하고자 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말은 쉽지만 어렵습니다. 어느 시기의 어떤 마음을 지칭하는 걸까요? 개인적으론 대학입학 전 기도했던 그 마음인가요, 취업 직후 회사에 감사하던 마음일까요. 저는 ‘초심’이 강조하는 바는 과거 회귀적 반성이 아니라 미래지향적 성찰에의 요청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자리가 달라졌을 때 달라진 시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거만함이 되지 않게 스스로 경계하라는 의미겠지요. 개별적 회고나 참회에 대한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성장한 개인이 어떻게 더 나은 공동체의 미래를 만들 것인지 책임을 함께 고민하자는 적극적 제안이라 생각합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건물에 꾸려진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에 출근하며 자녀를 둘러싼 논란 등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문재인 정권의 초심은 ‘촛불혁명’이겠지요. 광장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들었던 촛불의 의미를 복기해 봅시다. 개인적으로 겪은 부당한 피해를 호소하기 위해, 혹은 개별적인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나오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추상적인 거대 가치보다는 명백히 보이는 부조리함이나 특정 세력에 대한 울분으로 광장에 나오셨을지 모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정치권력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비판하고 시정하기 위해 나오셨을 겁니다. 젊은 시절 못다 이룬 민주주의의 완성, 완벽한 정의, 혹은 온전히 공정한 제도를 상상하며 촛불을 드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촛불광장은 인간에 대한 지속적인 경멸과 무자비한 무관심으로 인해 마음이 부서진 자들이 엮어낸 분노와 슬픔의 연대체였습니다. 차별과 배제, 낙인찍기 때문에 고통받고 아파하고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감의 연대체였습니다. 빈곤과 탐욕이 개별적 불운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결과임을 깨달은 시민들이 힘을 합쳐 공동체의 붕괴를 막아낸 책임의 연대체였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켜켜이 쌓인 부정의한 구조를 직시하고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물려주지 않기 위해 고민하는 변혁의 연대체였습니다.

이 정권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시민들의 분노와 슬픔, 아픔과 고통, 다른 삶을 위한 책임까지 받아 안고 태어났습니다. 기억하고 이어가겠다는 약속, 변화에 대한 희망으로 시작했습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파커 파머는 이 시대의 정치는 “비통한 자들의 정치”라고 지적합니다. 마음의 언어로 정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공감, 책무,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인간적 연결은 끊어질 것이며, 공공선에 기여할 정치는 창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민주주의에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지요. 시민의 마음 안에, 마음과 마음의 연결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국가와 민주주의, 시민의 의미를 되새길 의무가 문재인 정권의 초심인 이유입니다.

지금 ‘사태’가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는 마음이 부서진 자들의 연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사람들의 마음이 다시 부서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소리를 듣고 원인을 살피고, 다독이고 끌어안고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해야 할 정치권이 무너진 사람들의 마음을 밟고 넘어서려 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단단한 고정관념, 특정 이념 중심의 이분법, 추구하는 가치와 실천 간 분열적 불일치 등을 기꺼이 깨고자 하는 사람들이 정치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지요?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관용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해 불평등한 구조를 기꺼이 바꿀 용기를 가진 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지요? 운에 의해 연줄에 의해, 성별과 계층, 학벌에 의해 크게 기대어 누리며 살아 왔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책임을 느끼며, 기득권 재생산 구조를 거침없이 개혁할 사람들을 널리 찾아 두루 중용하고 계신지요? 시민들은 성인군자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 물음이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절망하는 것입니다.

부서진 마음은 각성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임계점을 넘어선 시민들은 다시 새로운 상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때가 조만간 도래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나영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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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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