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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하는 운동이 탁구인 것은 맞는가 보다. 공을 넘기는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 다시 받아치기 쉽지 않은 곳을 찔렀다. 국회가 정해주면 물러나겠다고. 즉각 퇴진하라는 광장의 촛불에 ‘토 달지 말아야’ 하는데 ‘한국말도 모르세요?’인 듯 국회 결정에 따르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총리 추천도 못하는 국회의 무능함을 간파당한 것이다. 벌써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흔들려 국회의 탄핵열차는 덜커덩거린다. 당마다, 대선후보마다 셈법이 다를 수밖에 없는 개헌과 거국내각 이슈를 던져 임기를 최대한 끌어보겠다는 의도다. 청와대를 나서는 순간이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니 3번의 담화에서 줄곧 난 그럴 줄 몰랐다거나 내 주머니에 챙긴 건 없다고 항변한다. 3번씩이나 고개를 숙였는데 탄핵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동정여론을 기대한 노림수이기도 하다.

국민은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렇게 무너질 수 있는지’ 걱정이 태산인데 국정혼란을 초래한 대통령은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죄의식이나 책임의식은 전혀 없다. 이런 무능과 무책임이 국민의 분노를 임계점까지 끌어올렸다. ‘불어터진 국수’가 되어 내팽개쳐지기 일보직전이다. 이제 성난 민심에 밀려나는 수밖에 없다. ‘손톱 밑 가시’처럼 성가신 존재가 된 지 오래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서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할 일은 2012년 대선후보 시절 미리 연습한 대로 하면 된다. “저는 오늘로 (지난 15년간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나누었던)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

만사검통(萬事檢通)이요, 기승전검(起承轉檢)이다. 어디든 검사가 등장한다. 현재의 민정수석비서관도, 기소된 피고인의 변호인도, 이제 막 수사선상에 오른 전직 대통령비서실장과 전직 민정수석도 검사 출신이다. 그들은 자신의 수사 대상이었던 피의자들로부터 배운 수법을 실전에 그대로 써먹거나 의뢰인에게 사주하는 중이다. 너도 나도 모른다, 알지 못한다며 극구 부인한다. 대통령도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알지 못했다며 떠넘긴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최순실이 잘못한 거지”라는 반응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책임을 피하기 위한 계산된 발언일 것이다. ‘왕실장’으로 불렸던 전직 비서실장은 최순실을 아느냐는 질문에 “보고받은 적 없고, 알지 못하고, 만난 적도 없고, 전화 통화한 적도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네 번 연속적으로 강화된 부정어법이 특이하다.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알았어야 할 사안이었음에도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면 일단 모르쇠로 일관한다. 무능으로 비판받는 것이, 바보라고 불리는 것이 감옥 가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부인하기 어려운 결정적 증거가 나오면 “기억나지 않는다”로 전략을 바꾼다. 형사사건 피의자나 피고인의 자기방어 수법이다.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범죄자의 내면의 세계이므로 입증책임을 지는 검사가 입증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전형적인 방어수법을 쓰는 것이다. 남에게 떠넘기기도 한다. 대통령, 최순실, 안종범, 차은택 등 공모자의 균열도 드러나고 김기춘은 대통령의 지시였다고 변명하는 등 난파선의 쥐처럼 자기 살길을 도모하는 모습도 보인다. 상황이 이러하니 거짓말 탐지기를 대보고 싶다. 거짓말 탐지기가 진실을 밝히는 족집게도 아닌 데다 인간을 기계의 조사객체로 삼는 것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침해이기 때문에 형법학자로서 거짓말 탐지기 사용을 적극 반대하지만 지금은 내 입장을 180도 바꾸고 싶을 정도다.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대통령에게 남아 있는 선택은 없다. 정치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대통령의 직에서 당장 물러나는 것이고, 법적 책임을 지기 위해 자신이 임명한 특별검사의 칼날을 받아야 한다. 특별검사의 수사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자연인으로 내려와야 한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앞에 결자해지, 즉 자신이 초래한 국정혼란의 책임을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 버티고 있는 대통령은 국민을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광장의 촛불은 인내 속에서 거대한 분노로 더 타오를 것이다. 국민은 국가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힘도 있지만 그 권력이 부패하거나 무능하면 권좌에서 끌어내릴 힘도 갖고 있다.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줄 것’이므로,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 정신’으로, ‘마음이 하나가 되면 무쇠도 끊을 힘이 생긴다’는 신념으로 하야촛불이 타오르게 해야 한다. “대전은요?” 더 이상 묻지 마라. 촛불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꺼지지 않고 타오를 것이다. 이번 주말엔 ‘대통령이 있는 곳 청와대 100m 전’에서 국민주권의 명령을 분명히 들려주자.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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