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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규칙은 스포츠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상상해 보라. 농구경기에 공격제한시간이 없다면 경기가 어떻게 진행될까? 점수가 앞서는 팀은 계속 공을 돌리기 일쑤일 테고, 지는 팀은 공격권을 가져오기 위해 일부러 파울을 해서 자유투를 유도하는 방법을 주로 쓸 것이다. 실제로 미국프로농구(NBA) 초창기 경기들이 그랬다. 재미도 인기도 없었다. 24초 이내에 공격을 해야 한다는 규칙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격제한시간이 도입되고 나서야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됐다. 조직의 성패도 마찬가지다. 변화를 위해선 기본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21대 국회가 시작됐다. 코로나19발 초유의 위기 상황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도 ‘일하는 국회’에 대한 요구가 강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제안이 넘쳐나지만, 무엇보다도 상시국회가 정착되길 바란다. 정기국회와 임시국회의 구분은 1948년 제헌국회 때부터 일본의회를 모델로 도입된 것이다. 이젠 시대 상황에 맞게 바꿀 때가 됐다. 헌법조항을 핑계대기도 하지만, 국회법을 바꿔 임시국회를 상시화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사실 대부분의 선진국 의회에선 상시회기가 기본이다. 미국, 영국, 독일의 의회는 상시회기이고, 프랑스도 헌법에서 9개월간의 정기회기를 지정하고 있지만 총리의 요구나 정당 간 협상에 의해 회기연장이 가능하니 상시회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또다시 원구성 협상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한다. 이해는 되는데, 동의하긴 어렵다. 국회법엔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첫 임시회 일정 및 상임위원장 선출과 관련해서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법5조에선 “첫 임시회는 의원의 임기 개시 후 7일에 집회”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41조엔 상임위원장은 “본회의에서 선거하며, 첫 집회일부터 3일 이내에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6월8일 이전에 모든 원구성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관행과 법이 충돌할 땐, 당연히 법이 우선해야 한다. 그게 법치고 민주정치다.

한국에선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미국 의회에선 원구성 협상이란 것 자체가 없다. 상하원의 모든 상임위원장직, 심지어 소위원회 위원장직도 다수당이 당연직으로 차지한다. 물론 회기 중에 상임위원회나 본회의 소집은 언제든 가능한 구조다. 여야 합의를 전제로 하는 한국 국회의 관행과 사뭇 다르다. 특히 상징적 존재의 의미가 강한 한국의 국회의장과 달리, 하원의 경우엔 하원의장이 다수당 지도부와 협의를 통해 본회의에서 어떤 법안을 언제, 어떻게, 어떤 순서로 심의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상원의 경우에도 실질적으로는 다수당 원내대표가 하원의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일부 한국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수당에 의한 ‘의회독재’가 제도화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정치환경은 한국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점은 ‘승자독식’의 다수결 원칙이 선거제도와 의회 운영에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는 이와 달리 선거에선 ‘승자독식’의 원칙을 채택하면서도 국회 운영에선 관행적으로 ‘합의주의’를 채택해오고 있다. 이 두 원리의 불일치가 반복적인 국회 파행과 공전의 원인이 되어 왔다. 독재의 경험도 길고, 사회문화적으로 동질성이 높다 보니 ‘승자독식’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분명 공감하고 이해하는 바다. 하지만 ‘견제를 위한 견제’나 ‘반대를 위한 반대’가 관행이란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상황은 책임정치 구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늘 국회 문 열고 당당하게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를 국민들은 바란다.

야당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그동안 여야가 바뀔 때마다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아온 것이 사실이고, 정당득표율과 국회 의석수 간의 괴리도 지속되어왔다. 지난 총선도 지역구 선거결과만 놓고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득표율은 50%에 조금 못 미치지만 전체 253석의 지역구 의석 중 163석(64.4%)을 차지했고, 미래통합당의 득표율은 42%에 달하지만 의석수는 84석(33.2%)에 불과하다. 관행상으로는 미래통합당이 원구성 협상에서 정당득표율에 해당하는 몫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협상은 하되, 국회법에 규정된 원구성 규칙을 어겨가면서까지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건 구태다. 여당보다 더 적극적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는 정책들로 승부를 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13대 국회로부터 32년이나 흘렀다. 최소한 상시국회는 기본이 돼야 한다. 지금 과거의 비효율 국회를 반복할 만큼 한가로운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룩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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