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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다. 1991년 최초로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공개한 김학순 등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날로 올해 제7회를 맞는 국가기념일이다. “나는 부끄럽지 않다. 이 순간을 평생 기다려왔다”는 고 김학순의 일성을 듣고 나는 전율하였다. 이른바 ‘유교적 정조문화’를 가졌다는 사회에서 이 고령의 여성은 어떻게 이렇게 날카롭게 인식을 벼릴 수 있었을까. 그때부터 ‘위안부’의 말과 재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99년에는 2000년 12월 도쿄에서 개최될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제 전범 국제여성법정’의 준비 차원에서 증언연구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 <증언4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이하 <증언4집>)를 2001년 출간하였다. 그동안 한국에는 1993년 <증언1집>이 출간된 이래 2집(1997), 3집(1999), 4집(2001), 5집(2001), 6집(2004) 등 모두 100건이 넘는 피해자 증언이 축적되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증언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재현 방법에 대한 논의에도 진전이 있었다. <증언4집>은 ‘증언자 중심주의’ ‘묻기에서 듣기로’ ‘구술체 재현’ 등의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위안부’ 증언연구는 한국의 공권력 피해자 증언연구의 맥락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대규모로 진행된 연구이며, 구술사·여성사·피해자 연구 등의 측면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가 되었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증언은 조명되지 않았던 사실과 진실을 밝히는 견인차가 되었고, 법정과 인권기구에서 정의실현을 위한 증거가 되었으며, 이름 없는 고령여성들이 역사의 주인이 되어 한국의 식민지역사와 아시아역사를 새로 쓰고 새로운 집합기억을 만들어내는 등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중대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그간 위안부 증언은 주로 한국어로만 회자되었다. 1995년 영국 학자 키스 하워드가 <증언1집>을 번역한 이래 증언집 전권이 번역된 적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에 여성가족부 지원으로 이뤄진 <증언4집>에 대한 영문 번역사업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이 사업은 서울대 여성연구소와 미국 어바인에 소재한 캘리포니아대학의 한국학센터 간 공동연구로 진행하였다. 위안부 증언은 어려운 한국어이다. 그것은 깊은 침묵 속에 놓인 40여년 전의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것이고, 가공할 성폭력 경험을 언설로 표현해야 하는 언어적, 신체적, 감정적 텍스트이다. 피해자들은 진한 사투리를 사용하였고, 때론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개인의 이야기이자 당시를 함께 살아냈던 집합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얼매나 우리 어매가 속이 상혔겄어. 그 여자가 쌀 내놓으라고 졸르니껜 쌀이 어디가 있겄어? 속이 상하지, 그래서 내가 세상에, 여섯 살 먹어서 뭔 밥 세 숟가락 돌라 먹고, 우리 엄마한테 그렇고롬 맞고, 그러니 일본놈이 쌀밥 줄게 가자 허니 내가 안 따라 가겄어?”(<증언4집>, 최갑순 증언, 173면)

<증언4집>을 출간한 연구원들은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그들의 힘과 영혼, 고통과 극복의 서사를 재현하고자 했다. 이런 의미를 살려내는 외국어 번역이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문 1차 번역을 담당했던 UC 어바인의 연구원들은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양국어 능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일본군 성노예제와 한국의 근대역사에 대한 지식과 감각으로 깊이 있는 번역을 해 주었다. 서울대 여성연구소팀은 번역의 대상물인 한국어 <증언4집>과 인터뷰 당시 작성하였던 ‘녹취록’을 바탕으로 증언자가 말한 증언의 의미를 정확하고 풍부하게 짚어내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위안부 증언의 원본은 녹취록이지만 또한 그들의 말 그 자체에 있는데, 해석과 판단의 난점들이 요소요소에 도사리고 있다. 연합군 자료를 조사해 온 강성현 교수(성공회대)가 말하듯이, 당시 연합군 심문자와 피심문자 ‘위안부’ 사이에는 통역관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매뉴얼대로 ‘위안부’들을 매춘부라는 뜻의 ‘prostitute’로 표기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명확한 이름조차 없었던 이 인권유린 행위는 1990년대 이후에야 인권 법률가들, 역사연구자 등에 의해 ‘체계적 강간’ ‘성노예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증언4집> 영문 번역은 대다수 고인이 된 증언자의 말을 기억하고 기록했던 한국의 연구자들이 증언자들과 잡았던 손을 놓지 않은 채 나머지 한 손을 저 태평양 건너의 연구자들과 맞잡고 진행한 것이라 하겠다. 이제 미국의 연구자들이 나머지 한 손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내밀 때 ‘할머니들의 언어’는 지구를 돌고 돌아서 메아리치게 되리라 기대한다. 이런 ‘번역의 사슬’로 인해 할머니들은 살아있는 영어로 세계인들에게 말을 하게 되었다. 한국이라는 지역의 이야기가 글로벌한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매체 및 형식에 대한 번역작업에 대한 지원이 요청된다.

<양현아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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