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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공화당이야 현직 대통령이 후보로 나올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민주당은 사정이 다르다. 내년 2월부터 시작될 당내 경선에 참여를 선언한 후보는 25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일정한 기준을 만족시켜서 1, 2차 텔레비전 토론에 참여한 후보는 20명이고, 두어 달 후에는 10여 명 수준으로 추려질 전망이다. 현재 민주당 후보 중 지지율 선두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다. 하지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지지도도 만만치 않다. 이 셋은 모두 중앙 정치무대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다. 오랫동안 잠재적인 대통령 후보로 여겨져 왔다. 또 하나 공통점은 모두 70대라는 점이다. 바이든과 샌더스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임기 중 80세를 넘기게 된다.

미국 역사상 만 70세 이상으로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사람은 트럼프가 처음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70회 생일에서 두 주가 모자랄 때 대통령에 취임했다. 민주당의 세 주요 후보 중 하나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두 번째 70대 대통령이 되는 셈이고,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전무후무한 70대끼리의 싸움이 될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6월 말의 TV 토론 이후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바이든의 상품성에 대한 회의가 생기면서 그를 지지하던 ‘온건한’ 민주당원들이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대안으로 밀기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샌더스나 워런을 지지하던 ‘좌파’ 민주당원들은 정치 신인 털시 개버드 하원의원이나 사업가 앤드루 양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해리스는 54세, 개버드는 38세, 양은 44세이다. 이 밖에도 만만치 않은 지지율을 기록 중인 피트 부티지지 후보는 37세, 훌리앙 카스트로 후보는 44세, 베토 오루크 후보는 46세이다. 유권자들이 후보의 나이를 중요 변수로 여기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지만, 이들 젊은 후보는 70을 넘긴 트럼프와 분명한 차별성을 보일 수 있다. 50세의 클린턴이 73세의 돌을 꺾은 1992년 선거나 47세의 오바마가 72세의 매케인을 상대했던 2008년 선거 양상이 재현될 수도 있다.

나이만 젊은 것이 아니다. 배경도 생각도 기존의 질서와는 판이하다. 해리스는 자메이카와 인도 출신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자란 유색 인종 여성이며, 개버드는 사모아 혈통의 힌두교도이자 이라크전에도 참전했던 현직 여성 군인이다. 양은 대만 이민 2세의 벤처 기업가로,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공약으로 내걸어 화제가 되었다. 부티지지는 공개 동성애자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금의 남성 배우자와 함께 백악관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정치판에는 이런 ‘젊은 피’들이 끊임없이 수혈된다. 이 다양한 배경의 에너지 넘치고 비전 분명한 신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에서 개버드나 양, 부티지지 같은 대통령 후보가 나올 가능성은 0에 가깝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50세 미만의 당선자가 53명(17%)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정치의 노령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총선이나 지방선거 때만 되면 각 정당은 청년 후보를 찾는다고 분주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젊은 유권자들의 대표자를 만들겠다는 발상인데, 생물학적 나이가 어려야 청년을 대변하는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모자란 생각이거니와 젊은 정치인을 청년 대표로만 소비하다 보면 오바마 같은 ‘모두를 위한 젊은 정치인’은 탄생하기 어렵다.

문제는 노령화의 문제가 여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에서도, 학교에서도, 시민사회에서도, 심지어 친목 모임에서도 ‘젊은’ 리더를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40대는 젊고 50대는 늙었다고 무 자르듯 이야기할 수는 없다. 젊은이 못지않게 창의적이고 도발적이며 힘이 넘치는 60대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젊은 60대’보다 ‘늙은 40대’가 더 많은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아닐지. 몸도 마음도 ‘젊은’ 지도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세대론과 세대 갈등이 중요한 사회 쟁점으로 떠오른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소위 ‘586세대’의 권력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자주 등장한다. 언젠가부터 ‘586세대’는 우리 사회의 ‘민폐’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느낌이다. 논리적 반박의 여지가 많은 감정적 수사라는 판단도 들지만, 현실을 직시하자면 상당 부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한때 ‘젊은 지도자’의 대명사였지만, 혁신은 미미하고 성취는 빈약했다. 무엇보다, 아래 세대에게 쉬이 곁을 내주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개버드와 양이 등장하지 못한 것은 30, 40대의 문제가 아니라 50, 60대의 책임일 확률이 더 높다. 몸도 마음도 ‘늙은’ 지도자들이 주책맞게 나서지 않는 것이 먼저다. 자리를 비워두면, 어디에선가 젊은 지도자들이 튀어나와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지금보다 나은 방식으로.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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