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14일 일본의 총선거는 아베 신조가 이끈 자민당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 사회의 구조적 변화 속에서 답답함을 호소하는 20~30대 청년의 목소리가 드리워져 있어서 늙은 분위기인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우선 52%란 전후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한 점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유권자의 절반이 선거에 불참한 이유는 정치 무관심이 아니라 정치 불신이었다.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불참자의 43%는 그 이유로 “투표해도 정치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 하였고, 18%는 “투표하고 싶은 정당이나 정치인이 없다”고 답했다. 한편 자민당을 지지한 유권자의 72%는 “야당이 매력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와중에 21석을 얻은 공산당의 약진은 고용불안과 소득격차 확대에 따른 젊은 세대의 불안감이 표로 연결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아베 신조가 집권한 2012년 총선거에 대한 총무성 자료에 따르면 당시 60대 유권자 수가 20대 유권자 수의 2.9배, 60대 투표율은 75%로 20대 투표율 37%의 2배를 상회하는 수치여서, 실제 투표자 수를 계산해 보면 60대는 20대의 5배에 달한다. 이런 세대 간 격차가 정치에 반영되면 일본은 그야말로 노인대국이다. 정치인의 입장에서 청년의 이익을 대변하는 임금 10만원 인상 정책보다 노년의 이익을 대변하는 연금 10만원 인상 정책이 선거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 결과 청년의 목소리는 사표(死票)가 된다.

초고령화 사회를 맞은 일본은 경제활력의 재생에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교육과 연구·개발 등 차세대 투자는 축소되고 연금, 의료, 간병 등 사회보장의 확대에 국가 재원이 집중되고 있다. 재정 적자는 천문학적 규모로 부풀어가고 있고 미래에의 부담 전가는 날로 증대하고 있다. 정치적 영향력이 강한 노년 세대에 청년 세대가 착취당하는 형국은 이른바 ‘실버 민주주의’의 한 단면이다. 노년 인구의 경제활동 지속을 위한 신사업 개발, 의료 및 건강사업의 육성 등도 필요하지만 청년의 에너지를 살리는 정책 없이 일본 경제의 재도약은 어렵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2 강남 청년취업박람회장에서 구직자들이 구인 안내문을 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대한민국은 한때 젊은 시절이 있었다. 청년은 산업역군으로 조국근대화를 이끌고 민주화의 기수였으며 월드컵 4강의 열기를 달군 다이내믹 코리아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지난 십수년간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세대가 바로 이들이다. 피케티의 주장대로 세습된 부를 누리지 못하는 대다수의 청년들은 회사가 잘 나가도 노동생산성에 미치지 못하는 실질임금의 감소로 삶이 위축되는 불평등한 현실에 처해 있다. 또한 성장잠재력이 높은 아시아로 기업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고용불안의 직격탄으로 미래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현실정치도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저성장·고령화 사회 경고음에 대처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논의에서 젊은 세대는 뒷전이다. 급증하는 기성세대의 복지비용은 증세 회피에 따라 미래세대에 부채로 전가되고 있다. 청년의 사회보장비라 할 수 있는 교육 및 인적자원 개발 투자는 교육부 손아귀에서 가을학기제 도입이나 산업에 맞게 학과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수준의 발상에 머물러 있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노인연금, 연금개혁, 신혼부부 임대주택 등은 청년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우리의 정치지형은 현상 변경을 두려워하는 노년 세대가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보수여당과 분열되어 지리멸렬한 야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연 청년 세대가 표를 주고 싶은 정치집단이 있는가. 결혼과 출산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수동적 존재, 미래의 재정부담을 떠안게 될 대상이 아닌 대한민국의 동력으로서 주인의식을 갖게 할 메시지는 무엇인가. 2015년 정치지도자들은 대한민국의 희망인 청년을 정치적 마이너리티(소수자) 신분에서 구출해야 한다. 그토록 싫어하는 일본 정치를 우리가 좇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손열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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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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