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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있다. 여든셋의 여인은 3년 전부터 혼자서 이동하는 것이 어려웠고 지난해 여름 폐렴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위기는 무사히 넘겼지만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병원을 감옥처럼 싫어하는 여인의 마음과 모친의 여생을 병원에서 보내게 하지 않겠다는 자식들의 의지가 합쳐져 여인은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수소문 끝에 장애인주치의제도가 시범서비스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퇴원 1주일째 되던 날 의료진이 집을 방문했고 가족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여인의 집에는 지금 작은 병동이 차려져 있고 비록 휠체어에 의지해서나마 가족과 함께 종종 산책길에 나서고 있다. 왕복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이동 시간을 기꺼이 감수해준 의료진 덕분이다.

또 다른 여인이 있다. 일흔여덟의 여인은 큰 병치레 한 번 없이 살아오다 한 달 전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며 아들에게 전화했다. 아들은 119를 불렀고 달려간 다른 가족에게 시 의료원으로 갈 것을 당부했다.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최초로 주민 발의 조례로 탄생한 의료기관이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시민운동에 몸담아온 아들은 오랜 주민운동 끝에 만들어진 그곳에 남다른 애정과 신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특별히 어려운 바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소망은 이뤄지지 못했다. 구급대에 실려 여인이 도착한 곳은 시 의료원보다 멀리 있는 사립 종합병원이었다. 미열이 있고 시 의료원에는 코로나19 선별진료소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시 의료원에 선별진료소가 없을 리 없고 나중에 확인한 바로도 그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여인은 응급실 격리병동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면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아들은 모친의 상태가 궁금했지만 수긍했다. 올봄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했던 병원이어서 감염 관리가 더욱 엄격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에 전개된 상황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다. 며칠 뒤 기관 삽관 동의를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폐렴으로 산소포화도가 매우 낮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여인은 그때까지만 해도 의식이 명료한 상태였다. 삽관 전 면회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이유였다.

삽관 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가족과 만날 마지막 시간이 될 수 있지 않느냐고 항의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면회는 임종 직전에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여인은 결국 가족과 만나지 못한 채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수면제로 잠재워져 삽관을 했고 1주일 뒤에는 인공심폐기라고 불리는 에크모(ECMO)를, 다시 1주일 뒤에는 혈액투석 장치를 몸에 달아야 했다. 면회를 결국 하기는 했다. 수면제 투약을 중단했는데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에 흐느낌으로 하소연한 뒤, 그리고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고 임종을 앞둔 시점이었다.

환자와 보호자는 의술에 대해 무지하다. 의료진이 하자면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술에 대해 무지하다고 해서 상식과 도리에도 무지하지는 않다. 임종 직전 면회가 가능하다면 고인과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순간에도 면회는 가능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고 그렇게 하는 게 인간의 도리다. 하지만 상식과 도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 아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지 못했다. 가족의 생명을 쥔 의사 앞에서는 을의 을이라도 자처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의료서비스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의료진과 환자·보호자의 기울어진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두 여인과 가족이 겪은 행과 불행의 경험을 운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 어떤 의료진을 만나더라도 환자의 상태에 대해 충분히 알 권리, 동등한 관계에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인간다운 배려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특별한 지식이나 노력, 그리고 운에 관계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민주적 의료서비스는 제도로만 가능하다. 수술실 CCTV 설치, 의사 수 확대, 나아가 전국민주치의제도 등 의료진과 환자·보호자 관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전공의 파업이 최근 한 달간 이어졌다. 양보를 거듭한 정부가 원점 재논의를 약속했지만 의대생 상당수는 국가시험 응시를 거부하며 계속해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의료서비스의 또 다른 한 축에 해당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영원히 을의 지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서비스 구매자로서 가져야 할 정당한 지위를 되찾아와야 한다. 서비스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가 대등해질 때 의료진에 대한 환자 및 보호자의 신뢰도 살아날 수 있다.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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