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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SNS에서 올라온 모 사립대학 40대 정규직 교수 K의 글이 여러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는 ‘살아남은 자의 유서’라는 글로 자기가 겪은 오랜 ‘직장 내 괴롭힘’(이른바 갑질)을 폭로했다. 어느 원로 교수가 행한 크고 작은 횡포와 비정상적인 행태를 밝혔다. 또한 그로 인해 공황장애와 죽음충동에까지 이르렀던 자신의 고통을 고백했다. K가 토로한 것은 단순히 개인의 갑질과 정규직 교수들 사이의 흔한(?) 갈등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미투 운동을 위시한 대학사회의 인권운동에 영향을 입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문제를 바로잡아 구성원들이 불안한 생존을 이어가지 않고’, ‘대학이 적극적으로 생의 가능성을 향유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래 준비했다고 한다. 그래서 폭로이면서 동시에 고백인 그의 글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가 속한 대학의 노조나, 비슷한 일을 겪은 다양한 직급의 교수와 대학원생, 그리고 졸업생들도 연대와 지지의 뜻을 전하고 있다 한다. 아마도 K가 온건하고 합리적인 인물이며, 후속 글을 통해서도 ‘대학이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는 곳’이기를 바라는 진심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K의 글에 대한 내 주변의 반응은 단지 놀라움과 연민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것을 통해 대학의 현실을 또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첫째, K가 폭로한 것 같은 일이 교수사회에 비일비재하(했)다는 체념 섞인 말들이었다. 특히 대학사회의 기기묘묘한 일들을 경험해본 교수들은, 대학의 어떤 주체들이 지닌 이상증상에 비유될 만한 행동양식에 대해 토로했다. 아마도 한국 대학의 비극이 그런 ‘증상’을 증폭시켜왔을지 모른다.

둘째, K의 글에도 여러 차례 성찰적 언술이 나오지만, 이런 사안을 통해서도 대학원생과 비정규직 교수들이야말로 구조화된 ‘직장 내 괴롭힘’, 차별과 불평등을 매일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경우 그 피해자들은 인권침해, 노동착취, 성폭력에 대해 목숨 걸 듯 최대한 소리를 지르고 싸워야 한다. 비정규직 교수들은 오히려 그런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 파편화되고 더 깊은 이중구속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K를 연민하면서도 정규직으로서의 그의 지위와 책임에 대해 지적했다.

이 문제는 대학의 위계나 권력 구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상대적 갑’ 자리에 있는 정규직도 인권침해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할 수 있으며, 지극히 비민주적인 사학재단과 대학체제가 가진 구조적 모순이 문제의 텃밭이 된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또한 이를 넘어, 오늘날 대학이 앓는 깊은 병의 ‘외부’가 없기 때문에 그 같은 폭로와 고백이 의미가 있음을 말해준다. 문제제기자는 스스로 한계를 넘어 연대로써 함께 자구책을 찾고 있다.

견디기 어려운 차별과 인권침해에 처한 개인은 당연히 법과 공적 권력의 힘에 호소해야겠지만, 동시에 일상에서 일터를 바꾸고 관계를 ‘민주화’하기 위해 진심으로 연대와 상호이해를 구하며 동료들을 만나야 한다. 이 쉽지 않은 일이야말로 개인이 거악에 대처할 힘을 줄 수 있고, 성찰과 시야의 확장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조직에의 참여를 통한 ‘을’들의 보호와 상호연대는 취약한 우리 개개인의 사람됨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오늘날 대학가에서 그런 조직은 여전히 약하지만 살아 움직이고 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이른바 ‘촛불혁명’이 남긴 몇 안 되는 과실 중 하나다. 대학원생노조는 10월부터 계속 국회 앞에서 농성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학원생의 안전노동과 산재보험 적용, 학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법개정, 조교·연구원·학회간사·강사에 대한 노동기본권 보장, 그리고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은 대학원생뿐 아니라 대학사회 내 모든 약자들의 인권을 개선하고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을 기득권과 대학자본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데로 돌리려는 것이다.

또한 합법성을 쟁취한 전국대학교수노조와 비정규교수노조 또한 수없이 많은 비정년·비정규직 교수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위한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고등교육개혁과 사회연대 자체를 존재 목적으로 하는 민교협2.0도 조직력의 확장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대학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대학의 약자들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비정규직 교수, 대학원생은 물론 대학의 모든 ‘을’들이 ‘기댈 곳’을 찾기 바란다. 지금 당장 ‘나·우리’를 위한 조직이 어디 있는지 검색하고 상담하시라. 그리고 각 조직의 책임자·실무자께서도 더욱 꿋꿋하시라.

천정환 |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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