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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규모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지난 15일 한국을 포함한 15개국이 서명함으로써 역사적인 출범을 알렸다. RCEP는 한국에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먼저 한국의 철강, 자동차 및 부품업체 등의 수출에 청신호를 켰다. 또한 미·중의 전략적 경쟁의 심화와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으로 새로이 부상하는 지역 공급망 형성에 대한 적절한 대응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신남방 정책에도 힘을 더하는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향후 한 가지 더 강조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한국의 이번 RCEP의 서명이 ‘다자간 개방적 자유무역주의’라는 우리의 ‘원칙’에 입각한 결정이었다는 점이다. 나날이 격화되는 미·중의 전략적 경쟁 구도하에서 한국은 국민들과 합의된 원칙과 이를 기반으로 정부가 정책적 방향성과 함께 유연한 입장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진 중견국가이자, K방역으로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중 하나로 점차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한국이다. 하지만 미·중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한국은 그간 양 강대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통해 가능한 한국의 이익을 유지 또는 확대하려고 노력해왔다. 미·중 사이 한국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들이 이와 유사한 입장을 취했으며 가능한 선에서 모호성의 실행은 틀린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략적 모호성은 세 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먼저 한국의 모호성은 미·중이 허용하는 현안과 시간 내에서만 실행이 가능하였다. 즉 한국이 모호성을 택한 것이 아니라 미·중, 특히 미국은 현안의 민감성과 시기에 따라 한국의 모호성을 허용해주기도 했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같이 꼭 필요한 경우에는 강한 압박으로 한국의 선택을 이끌어내며 자국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해왔다.

둘째, 한국의 모호한 입장은 미·중 모두로부터 전략적 신뢰를 감소시켜왔으며, 단기적으로는 현안을 회피할 수 있었지만 사안에 따라 결국 더 큰 압박을 받기도 했다.

셋째, 미·중의 전략적 경쟁의 심화로 인해 한국의 모호성이 통할 공간과 시간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미·중은 기존의 경제와 군사·안보 분야에서의 전략적 경쟁에 이어 최근에는 홍콩, 대만,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관련된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 코로나19 대응에서 터져나온 ‘체제 우위’ 논쟁에 이어 미국이 중국과 중국공산당을 분리하는 ‘이념’의 논쟁으로까지 갈등의 전선이 확대되어왔다. 이 과정에서 EU 국가들, 호주, 뉴질랜드 등 자유진영 국가들이 점차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동시에 한국의 모호성이 통할 공간은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한국은 갈등이 고조되는 미·중 사이에서 모호성을 지키려다 아이러니하게도 모호성을 통해 지키고자 했던 우리의 근본적인 가치와 국익의 우선순위에 오히려 혼란이 초래되기도 했다.

이번 RCEP의 출범은 중국에 많은 의미가 있다. 미국이 일부 영역에서 탈중국 또는 배제 시도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지역 경제 공동체의 수립이었다. 반면 미국의 바이든 당선자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가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추세는 향후에도 미·중이 서로를 견제 또는 배제하며 경제뿐 아니라 군사·안보 및 가치의 영역에서 한국의 ‘선택’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한국은 모호성에서 벗어나 미·중 사이의 민감하고 주요한 현안들에 대해 한국 사회 내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공개된 정보와 더불어 건전한 논쟁을 거치며 국민들과 합의된 가치와 정체성, 그리고 국익의 우선순위를 선제적으로 정의하는 ‘원칙’의 확립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한국의 원칙은 정부정책으로 공개될 것과 사전 정지 작업을 거치고 적절한 시기를 기다려 공개해야 할 것으로 나누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번 RCEP의 서명은 다가오는 또 다른 미·중 사이의 민감한 현안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한국의 결정이 미·중 사이에서 한쪽의 선택이 아닌 우리의 원칙에 입각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향후에도 ‘다자간 개방적인 자유무역’이 국민들과 합의된 한국의 원칙임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면서 이를 지속적으로 국제사회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CPTPP의 가입에도 원칙에 입각하여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나아가 중국에도 CPTPP에 함께 가입하자고 권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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