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미는 취미생활에 도전만 하는 것이다. 피아노, 바느질, 발레에 이르기까지 안 해 본 취미생활이 없다. 물론 이 중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은 여전히 하나도 없지만. 최근에는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 역시 처음은 아니다. 1년 전에도 그림 수업을 신청했다가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게 귀찮아서 딱 한 번 나가고 돈만 날렸다.

한 개도 끝까지 못하면서 왜 자꾸 이것저것 찔러만 보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나 자신이 조직의 부속품인 무채색 벽돌 한 장처럼 느껴질 때마다, 한번쯤 ‘예술가’로 살아보고 싶다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며 ‘현실도피’를 하는 버릇을 아직도 못 버린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럼 왜 꿈만 꾸면서 단 하나도 진득하게 배우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것 역시 딱히 할 말은 없다. 내가 만든 에코백은 곧 솔기가 뜯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바늘땀이 엉성했고, 내가 그린 그림은 내 눈으로 봐도 영 볼품없기 짝이 없었다. 결국 이건 내 적성이 아니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금세 포기해 버리고 마는 패턴의 반복. 취미생활조차 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몹쓸 ‘프로병’을 못 버린 탓이다.

그런데 그림 수업 첫날, 강사가 수업을 시작하기 전 이런 말을 했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눈은 TV에 나오는 화려한 색감과 쇼윈도에 전시된 아름다운 디자인에 익숙해져 있어요. 눈은 고급스러운데 손이 그걸 따라가지 못하니 자신의 그림이 성에 찰 리 없죠. 여러분은 분명 자신의 작품을 보고 실망하게 될 겁니다.” 너무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배워보겠다고 찾아온 사람한테 넌 곧 자신에게 실망하게 될 거라고 예언을 하다니.

대신 그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 시간 자체에 집중하라고 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그 말. 우리가 살아 오면서 가장 많이 들어본 거짓말 중 하나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그의 말은 묘한 울림을 주었다.

“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IT 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좋지 않은 학벌을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무실에서 먹고 자길 밥 먹듯 했죠. 덕분에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승진도 하고 이만 하면 성공했다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에 병이 들었나봐요. 가족 얼굴 보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대인기피증에 걸린 겁니다.”

일종의 공황장애였다. 그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카페에 가서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하루 종일 앉아 시간을 보냈다. 회사를 원망하고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고 결국엔 자기 자신을 원망하면서. 그런 그를 구원해준 것이 그림이었다. 멍하니 앉아있는 것도 지칠 무렵 심심풀이 삼아 눈 앞에 있는 지우개를 그려봤는데, 얼마나 집중했던지 정신을 차려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더란 것이다. 마음의 병에 걸린 후 처음으로 불안과 미움에서 해방된 몇 시간이었다고 했다.

“여러분은 프로가 되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잖아요. 그림을 그리는 시간과 과정에 집중하면 내 작품이 아무리 엉망이더라도 예뻐 보일 겁니다. 그 그림을 그리는 동안 느꼈던 즐거운 기억이 떠오를 테니까요.” 이것이 바로 ‘프로’가 되기만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아마추어’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아닐까.

위키리크스 외교문건 보도, 에드워드 스노든의 감청 폭로 등 세계적 특종을 일궈낸 ‘가디언’의 전설적 편집장이었던 앨런 러스브리저는 택시기사로 일했던 아마추어 연주자가 쇼팽의 곡을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에 반해 자신도 그 곡을 완주해 보겠다며 1년간 노력하는 과정을 엮어 <다시, 피아노>란 책을 냈다.

러스브리저는 이 책에서 ‘뉴요커’ 기자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찰스 쿡의 말을 인용한다. “대부분의 프로페셔널보다 아마추어인 당신의 처지가 더 낫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아마추어에게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해야 한다는 엄혹한 멍에가 없다. 부담감과 책임감에 짓눌릴 일도 없고, 치열한 경쟁도 없다. 아마추어는 모든 취미가 본래 그렇듯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로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당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온정적인 자세로 연주를 들어줄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다.”

정말 그랬다. 첫 수업에서 그렸던 내 별 볼 일 없는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니, 온정적 태도로 그림을 감상해 준 한 회사 후배가 댓글을 달았다. “우와 이런 건 어떻게 그려요? 존경의 눈빛!!”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란 말이 무능함을 질타하는 용도로 쓰이는 사회에서 이런 아마추어 예찬은 현실도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주 52시간제’가 시행됐지만, 직장인들은 여전히 퇴근 후에도 더 완벽한 프로가 되기 위해 자기계발을 하러 가야 한다. 그래도 피아니스트 콘래드 윌리엄스가 말했던 것처럼 “성실한 준비, 약간의 용기와 음악에 대한 사랑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아마추어”의 세계는 때로 치열한 프로의 세계보다 더욱 아름답다.

<정유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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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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