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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홍수가 심각하다는 말을 들은 누군가가 새삼스러울 것 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거기 원래 자주 홍수 나는 곳이잖아.”

파키스탄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기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때도 이미 누적 사망자는 1000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맞다. 그의 말처럼 파키스탄은 원래 몬순철인 6~9월이 되면 종종 홍수가 나곤 한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파키스탄에서는 지난 6월부터 두 달 넘게 하루도 멈추지 않고 쉴 새 없이 비가 내렸다. 몬순이 시작된 후 불과 3주 만에 이미 한 해 전체 강수량의 60%에 달하는 비가 쏟아졌고, 현재는 190%에 육박한다. 파키스탄은 지난 두 달에 걸쳐 꾸준히 ‘익사’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홍수가 많이 나는 지역’이라는 지리적 상식이 그의 기후재난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올해는 다르다는 사실을 더디 알아차리게 만들었을 뿐이다. ‘원래 덥고 건조한 지역’인 아프리카의 가뭄이 웬만해서는 더 이상 놀라움과 충격을 주지 못하게 된 것처럼.

그렇다면 ‘원래 그렇지 않았던’ 지역의 경우는 어떨까. 올해 유럽에서 대형 산불로 초토화된 면적은 8월 중순까지 7000㎢에 달한다. 축구장 98만개를 합친 크기이고, 아제르바이잔 전체 면적과 맞먹는 규모다. 프랑스 보르도에서는 산불이 열흘 넘게 꺼지지 않았고, 스페인에서는 산불이 번지면서 달리는 열차에 옮겨붙어 승객들이 화상을 입었다. 이 충격적인 뉴스 앞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거기 몇년 전부터 계속 그랬잖아.”

새롭지 않고, 놀랄 일도 없는 세계

극단적인 날씨에 자주 노출될수록 이상기후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질 것이라 예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2019년 캘리포니아 데이비스대학의 프랜시스 무어 교수팀은 21억개의 트위터 포스팅을 분석해 ‘폭우’ ‘폭설’ ‘폭염’ ‘혹한’ 등 기후에 대한 언급량 추이를 이상기후가 나타난 카운티별로 살펴봤다. 무어 교수는 “(혹한이나 폭염 등) 비정상적인 기온을 처음 경험했을 때는 트위터상에 날씨에 대한 언급량이 폭발했지만, 2년 연속 같은 현상이 반복되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8년째부터는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상기후에 완벽하게 적응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극단적인 날씨를 더 이상 이례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됐기 때문에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멈췄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이상기후를 ‘뉴노멀’로 받아들이는 데 걸린 기간은 고작 2~8년이었다.

원래 그런 곳은 원래 그래서 노멀한 것이고, 옛날에 안 그랬던 곳도 이젠 뉴노멀이 됐으니 더 이상 충격이 되지 못한다. 익숙한 비극은 익숙해서 더 이상 비극이 아니고, 새로운 비극은 너무 빨리 익숙해져서 더 이상 비극이 아니다. 노멀과 뉴노멀을 너무도 빠르게 학습해서 모든 것이 새롭지 않게 된, 웬만해선 놀랄 일 없는 세계. 그 속에서 빙하는 10년 전에도 녹고, 올해도 녹고, 10년 후에도 녹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세계에서도 결코 뉴노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다. 예전만큼 에너지를 마음껏 쓸 수 없고, 써서도 안 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은 더 이상 놀랍지 않지만, 공장이 잠시라도 멈추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충격이다. 창 밖의 날씨는 어떤 풍경도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지만 건조기와 식기세척기, 에어컨을 동시에 틀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에는 익숙해질 자신이 없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것은 막아야

그래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난이 발생하자마자 너무 쉽게 화석연료와 원전 회귀 현상이 일어나고, 신재생에너지 축소 움직임이 나타난다. 산불도 급하지만 당장 더 급한 불부터 꺼야 하지 않겠냐는 논리다. 어차피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바닷물의 기온이 올라가 원전의 냉각수도 확보할 수 없고, 강바닥이 말라붙어 물류가 막히면서 공장도 돌아갈 수 없는데 말이다.

기후변화에 뉴노멀이란 없다. 그것은 새로운 노멀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롭고, 매일매일 거대해지고 있는 비정상일 뿐이다. 오는 24일은 전 지구적인 ‘기후정의 행동의날’이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행동해야 한다.

<정유진 국제에디터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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