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과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도시들이 쇠락하고 있다. 웬만한 군소 도시마다 구도심은 활력을 잃었고 인구 변동, 주거, 교육, 교통 문제로 몸살을 앓는다. 상황의 심각성으로 보건대 도시재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미 2005년 노무현 정부의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정책 수립 이후 이명박 정부의 도시 활력 증진, 박근혜 정부의 도시재생 지원사업 등이 전개되었거니와, 각 정부가 바라보는 도시재생의 가치관은 별개로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 들어 매년 10조원씩 향후 5년 동안 50조원이 투입되는 것은, 어떤 정파적 관점이 아니라 그야말로 이 나라의 안전하고 안정된 일상이 파괴될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런 중에 늘 보게 되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 ‘해외 사례’다. 공무원이나 시·도의원들이 현지를 방문한다. 열흘 정도 일정을 잡아 서너개 도시를 살펴보게 되는데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몇 개 도시들의 외형을 주마간산으로 살피기 쉽다. 그 도시들이 오랫동안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섬세하게 추진한 과정을 보기보다는 그렇게 하여 가시적으로 보이는 결과들, 특히 특정한 랜드마크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스페인의 북부 도시 빌바오다. 역시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이 미술관 때문에 한 해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모여든다고 한다. ‘도시재생 빌바오 랜드마크’, 이렇게 검색하여 보면 국내의 수많은 지자체에서, 지역 기관에서, 공무원과 시·도의원들의 출장 보고서에서 ‘랜드마크 하나로 관광객이 모여든다’는 주장을 숱하게 볼 수 있다.

과연 그러한가. 빌바오는 1980년대 이후 거의 한 세대 이상을 바라보는 장기적인 도시재생 계획을 추진했다. 네르비온강의 수질 개선, 보행 위주 교통체계 개선, 각종 스포츠 시설과 클럽을 통한 실핏줄 같은 인간관계의 회복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시민 중심의, 시민 참여의, 시민이 실제로 활동하는 거버넌스가 원동력이었다. 영국도 1990년대 말에 도시재생뉴딜사업(NDC)을 전개하였다. 이 약자의 ‘C’는 ‘Communities’, 즉 공동체다. 지방정부, 기업, 시민공동체, 학교 등이 거버넌스를 구성하여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추진하였다. 글쎄, 우리의 오래된 관 주도 방식에서 과연 이러한 착상 자체가 가능할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1세기 들어 주요 선진국마다 스포츠클럽을 중심으로 한 시민 스포츠 정책을 확장하였다. 이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정부도 2000년대 이후 스포츠클럽 활성화 정책이 펼쳐졌으나 대체로 ‘관 주도’의 일시적 지원 ‘사업’이었다. 최근에는 3년간 매년 3억원씩, 총 9억원의 국비를 지원하는 ‘K-스포츠클럽 공모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으나 역시 지자체 중심이고 시설 운영 중심이다. 물론 인구 1만5000명당 체육관 1개인 일본에 비해 인구 5만7000명당 체육관 1개라는 절대 부족 요소가 있으므로 시설 확충이 필요하지만, 그게 스포츠클럽이나 그 사회적 문화 형성의 본질은 아니다. 

스포츠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스포츠 이미지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다. 물론 신체를 건강하게 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지구를 구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신체를 건강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무이한 목표가 되고 나아가 정부 정책이 되면,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건강한 신체’에 부합하지 않거나 어떤 장애나 나름의 소신으로 그것을 거부하게 되면 스포츠 정책의 방외자가 되고 심지어 비애국자가 된다. 이른바 ‘건강’은 특정한 수치와 지표로 객관화되기를 요구한다. 그리하여 특정 목표가 설정되고 대회가 열리고 우승자와 그 밖의 열패자가 생긴다. 스포츠 좀 즐겨볼까 하다가 금세 그만둔 사람들이 증언하듯이 전국의 주요 스포츠 시설들의 동호인 조직조차 대회 참가를 전제로 하는 우승열패 문화가 압도적이다. 

노령화 추세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불고 있는 노인 대상 스포츠와 여가 활동 역시 ‘활력’이 주제다. 그 활력은 물론 신체에 집중되는 바, 그러한 신체를 기본적으로 갖추지 못한 노인들은 이념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배제된다. 또한 ‘활력 넘치는 노인’이란 이미지는 각종 용품 소비와 연결되는 바, 비용 측면에서도 전적으로 배제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스포츠클럽 사업이 결국 시설 확충과 그에 따른 인력 충원으로 귀결될 수도 있어 염려스럽다. 앞서 스페인 빌바오를 얘기했듯이, 그들의 도시재생 목표가 관광객 유치가 아니었듯 그 도시의 스포츠 활성화도 시설 확충이 목표가 아니었다. 해체 위기의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여 고립과 외로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을 안정적인 사회 관계로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핀란드는 아예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과 맞물려 전개된 것이었고 최근 독일과 덴마크, 네덜란드 등 이민자가 급증하는 곳에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 형성을 위해 스포츠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요컨대 20세기의 국가주도형 스포츠에서 21세기의 시민참여형 스포츠로 그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이로써 도시의 쇠락을 막고 급변하는 사회 변동에 대응하는 것이다. 

우리의 도시재생에 스포츠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대한 시설이나 최신 장비까지도 필요 없다. 우선 주민들이 웅크리고 있는 쇠락한 동네부터, 최소한의 사회 행위 동기를 상실하고 있는 가난한 마을부터, 인구 변동이 극심하여 서로의 몸이 부딪치는 지역부터 작은 스포츠 공간을 마련하고 청년 스포츠 전문가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대도시의 작은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간 것처럼. 그렇게 작은 몸의 움직임들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그 지역 공동체가 더 이상 해체되지 않아야 한다. 그 지점에서부터 진짜 도시재생이 시작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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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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