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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사법농단 사건에서 처음으로 직권남용죄에 대해 일부 유죄 판결이 선고되었다. 형법이 정한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은 이렇다. 직권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남용해야 하고, 그 남용으로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키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해야 한다. 첫째와 둘째의 요건을 합치면 이는 ‘일반적 권한(직무 권한)에 속하는 사항이기는 해도 구체적으로 그 실질은 정당한 권한 외의 행위를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면 인사권을 가진 공무원이 자격 없는 사람을 공무원으로 채용해 주는 행위가 직권남용이다.

그동안 사법농단 사건에서 직권남용죄로 기소된 재판 개입 행위에 대해 무죄 판결이 선고된 이유는, 피고인들이 일반적 권한인 사법행정권을 가지기는 해도 사법행정권은 재판에 관해서 직무감독을 할 수 있는 권한이 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즉 범죄 성립의 첫째 요건인 직권의 존재부터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판단의 근저에는 사법행정권으로부터 재판의 독립을 수호해야 한다는 요청이 있다. 그런데 아직 판결을 선고받지 않았지만, 피고인 중 한 사람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공판에서 “재판은 신성불가침한 영역이다”라는 주장을 폈다. 개입하지 않아야 할 재판에 개입했다 하여 직권남용의 형사책임을 묻자 재판엔 개입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원칙을 내세워 책임을 면하려는 논리다. 아이로니컬하지 않은가.

법학에서 권한의 남용은 권한의 일탈과 늘 한 쌍이다. 일탈은 권한의 정당한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를 말하고, 남용은 권한의 범위에 들어가기는 해도 권한 행사가 목적이나 동기에서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위를 말한다. 그래서 남용은 외형과 실질이 어긋난다는 일종의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원론적으로는 공무원에게 위법부당한 행위를 할 권한이 있을 리 없고, 남용은 본질적으로 권한 외 행위다. 이런 구조상 직권남용죄에서는 권한의 남용과 일탈의 경계가 모호하다.

권한 범위 벗어나는 건 ‘일탈’
권한 내 부당행위는 ‘남용’
들여다보면 구조상 모호한 경계
사법행정권 직권남용죄 해석론
‘정의와 상식’을 더 생각한 듯

한편 일반적 권한이라고는 해도 모든 경우에 그것이 무엇인지 법령 등에 일일이 다 써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실제로는 일반적 권한의 범위를 벗어나서 어떤 행위를 한다고 하더라도 공무원이 자기의 직무와 완전히 무관하게 어떤 권한을 행사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고, 그런 유형의 행위는 직권남용죄를 벌하는 규정의 적용 대상도, 관심 대상도 아니다. 결국 일탈 행위라 해도 실상은 직무와 상당한 정도의 관련성을 가지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권한 행사가 남용의 의도로 행해졌는데 그 범위가 본래의 직무 권한을 벗어나 있더라도 이와 상당한 관련성이 인정될 때에는 직권남용죄를 인정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일반적 권한의 범위를 넓게 보아, 일정 조건 아래에서 월권적 남용도 직권남용죄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자는 해석론이다. 일부 형법학자들도 이런 해석론을 취한다.

대법원은 일반적 권한의 일탈이나 유월의 경우에는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견해에 서 있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의 사실관계를 들여다보면 일반적 권한의 범위가 칼로 자르듯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대법원은 대통령비서실장과 정무수석비서관실 소속 공무원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시민단체들에 대한 자금 지원을 요구할 일반적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특정 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 요구를 직권남용으로 보았고, 재정경제원 장관이 채권은행들에 기업에 대한 대출을 권고하거나 요청할 수 있는 일반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이번에 유죄가 인정된 범죄 사실 중 재판 개입에 관해서 본다면, 재판부는 재판사무 중 핵심 영역에서 판사의 사건 처리 지연이나 미숙한 재판으로 인한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사법행정권의 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을 취했다. 이것은 사법행정권의 범위에 관한 새로운 해석론이라고 할 만하다. 이 판결 중 사법행정권에 관계된 직권남용죄 일반의 해석론은 무려 54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이런 해석론의 근저에는, 재판 개입 행위의 가벌적 위법성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직권이라는 문구의 협소한 해석론에 얽매어 처벌을 못한다는 것은 정의와 상식에 반한다는 인식이 있었을 듯하다.

사법농단 사건에서는 그동안 연거푸 무죄 판결이 선고되었다. 무죄 판결이 선고될 경우의 문제는 사법농단 사건의 실상이 그 속에 파묻혀 버리고 이에 따라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나면서, 정작 사법농단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교정은 몰각되는 결과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판결을 선고하지 않은 1심 법원이나 상급 법원의 다음 판단이 주목된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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