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치 그만둘래.” 알고 지내는 정치인들로부터 가끔 듣게 되는 말이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것으로 들린다. 안타까운 것은 정치를 계속해주었으면 싶은 정치인들 중에서 정치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점점 더 자주 듣게 된다는 점이다. 당장 몇몇 사람들 얼굴이 떠오르는데, 오늘은 자유한국당 이야기를 할 생각이어서 원래 그 당 출신 중에 꼽자면 얼마 전 정계를 은퇴하고 스타트업으로 제2의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한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떠오른다. 나는 그와 정치적 견해를 온전히 같이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가 꽤 괜찮은 정치인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한계가 있겠지만, 적어도 그는 정치의 의미와 그 부끄러움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아주 멈춘 적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좋은 정치인일수록 정치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정치를 왜 하는 것일까? 내가 지켜본 정치인의 삶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일정은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고, 회의는 무의미하기 일쑤이며,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가짜 신념이 진심인 척해야 하고, 운 없으면 밤 늦은 시간 술 취한 시민에게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적어도 지금 한국의 정치는 자신의 행동이 가지는 의미와 그 부끄러움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아주 멈추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내면의 고통을 강요한다. 괜찮은 정치인일수록 정치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것은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가 하면 그런 사유를 아주 멈춰버린,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사유를 단 한 번도 시작해본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정치인들도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정치를 더 열심히 한다. 내면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가능한 일일 것이다. 10여년 전 나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쓴 책에서 오늘날 한국인들이 겪는 마음의 병을 ‘정체성 폐쇄(identity foreclosure)’라고 진단한 적이 있다. 학벌경쟁의 최정상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조차 자신이 왜 열심히 공부했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입학한 후에도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공부해서 무엇을 하려는지, 왜 그것을 하려는지 모른다. 의미가 없는데도 안 하면 불안하니까 계속 열심히 한다. 입시공부하느라 나는 누구인지, 내가 욕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체성이 닫혀버린 것이다. 정체성 폐쇄는 미처 자아가 성숙하기 이전부터 부모가 너는 이다음에 커서 판사가 되어야 한다, 의사가 되어야 한다 같은 목표를 계속해서 주입하면 흔히 나타난다. 나만의 정체성이 형성될 기회가 미리 차단되어 버리는 것이다. 정치의 의미와 그 부끄러움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한 번도 시작해본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정치인들도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정치인 중에서 정체성 폐쇄의 대표적 사례를 꼽으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당대표 시절에도, 대선후보 시절에도,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는 자신이 왜 정치를 하는지, 아버지 이외에 대통령에게 주어진 막중한 공적인 책무가 무엇인지 사유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고, 그 제한된 인식의 틀 안에서 직무를 수행하다가 탄핵당했다. 영어의 몸이 된 지금 그는 매우 혼란스러울 것으로 생각된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인식의 지평 속에서 자신이 왜 갇혀있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정치시평이라는 것을 쓰다보면 집권여당의 책임에 먼저 화살을 돌리게 되는 것이 순리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자유한국당의 폭주는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어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주말 한국당의 광화문 집회에서 나온 발언들을 보자. “좌파천국” “김정은의 대변인” “대북 제재 풀어달라고 구걸” “베네수엘라행 특급 열차” “종북 굴욕외교” 같은 것들이다. 현 정부의 정책에 잘못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정책들은 비판받아 마땅하고 그것이 건강한 민주주의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정말로 이 나라에 평화체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언어의 천박함은 둘째 치고 제1야당으로서의 어떠한 책임감도 찾아볼 수 없다. 

100년 전 이 땅에서 3·1운동이 있기 한 달 전,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을 통해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사람만이 정치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설파했다. 종북 타령이 진짜로 그들의 신념인지도 확실치 않지만, 그 책임윤리의 완벽한 결여에 이르면 감탄스러울 지경이다. 그래도 그들은 열심히 한다. 정체성 폐쇄이다. 자신이 하는 행동의 부끄러움에 대해 한 번도 사유를 시작해 본 적이 없는 그들의 정체성 폐쇄는 우리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한다. 허탈한 것은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왜 그러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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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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