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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

추석에 도심을 걷다가 경복궁을 지나는데, 한복을 입은 외국인이 수문장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낯설지 않은 이 광경을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오래전 궁궐에 수문장이 등장할 때, ‘웬 싸구려 퍼포먼스인가’ 하며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혜안에 감탄하고 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을 볼 때마다 이 나라가 어떻게 비칠까 촌스럽게 가늠하곤 하는데, 어느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 나라가 그럴듯하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의 경관이 뛰어난 장소를 소개하는 채널인데, 거기에 달린 외국인들의 댓글을 읽으며 어리둥절했다. 많은 외국인들이 ‘서울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한국은 나의 꿈입니다. 언젠가 반드시 가볼 것입니다’라며 앞다투어 고백하고 있었다. 오랜 기억 속의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메트로폴리스는 제법 아름다운 도시로 변모하고 있었다.

우리 세대가 과거의 환영에 사로잡힌 사이에 한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었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눈떠보니 선진국’이 된 것이다. 간혹 비틀거리기는 했으나 꾸준히 성장했고, 그 성장이 역치를 넘어서 마침내 선진국이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여러 징조가 있었다. 반도체, 스마트폰, 조선, 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에서 선전한 지는 오래되었는데, 우리는 자신의 역량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영화 <기생충>과 그룹 BTS, 그리고 넷플릭스 드라마를 통해 드러난 문화적 저력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자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통계적으로는 ‘넘사벽’ 일본을 구매력 평가 1인당 GDP에서 넘어선 게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우리 세대가 상상도 못한 일이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현지인들을 구출해 오는 모습은 또 어떠했는가. 한국어는 변방의 언어라는 막연한 인식도 급격히 바뀌었다. 세계적인 어학사이트에서 영어 사용자가 학습하는 외국어를 살펴보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일본어, 독일어에 이어 한국어가 5위를 차지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제대로 굴러가게 된 것’일까?

박정희의 치적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있지만, 부분적으로만 동의한다. 박정희 이후 30년 이상 계속 이어지는 발전이나 그가 집권한 시기 여러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된 발전을 설명하지 못한다. 여느 후진국 독재자처럼 나라를 말아먹지 않은 것에는 감사하지만, 그가 씨를 뿌린 모순과 폭력도 잊어서는 안 된다. 막연히 회자되는 남다른 교육열이 원인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한국이 본래부터 지식국가이기는 한데, 교육열이 높은 원인을 다시 추적해야 하지 않을까? 본래 탁월한 민족이다?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게으른 자아도취일 뿐이다. 20세기 중반까지는 못난 민족이었다는 말인가? 일본 제국주의 덕분에 근대화되었다는 개소리는 사양한다. 제레미 다이아몬드가 명저 <총, 균, 쇠>를 통해 특정 대륙에서 문명이 발전한 이유를 인상적이고도 실증적으로 설명한 것처럼 누군가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발전의 정도와 시기에 차이는 있으나 유럽국가가 아니면서 큰 발전을 한 중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한국이 동아시아로 묶일 수 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는 있을 것 같다. 그 후에 한국이 두드러진 이유를 찾는 것은 비교적 용이해 보인다. 동국대 황태연 교수는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이라는 방대한 책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유교국가라는 것을 지적한다. 나아가서 유럽 국가들의 앞선 근대화도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유교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을 논증한다. 후자는 막스 베버가 무덤에서 일어날 엄청난 주장인데, 학문이 부족한 나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선진국이 된 이유를 왜 알아야 할까? 발전을 지속하면서 발전의 그늘에 드리워진 양극화, 인구절벽, 비인간적인 교육, 국가자원의 편중, 노인 빈곤, 높은 자살률, 후진적인 정치, 여전한 여성차별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대선이 반년도 남지 않았다. 지도자가 되려는 이들이 ‘어떻게 선진국이 되었고, 그 대가는 무엇인가’에 대한 소견을 말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으면 한다. 허황된 기대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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