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를 다룬 영화 <나랏말싸미>가 얼마 전 개봉했는데, 역사왜곡 논란으로 안타깝게도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 극영화가 역사를 다룰 때는 허구적 창작이 불가피하며, 그것이 영화적 즐거움의 중요한 요소다. 이때 창작의 의도와 논리가 관객의 마음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한글 창제에 승려 신미의 역할이 컸다는 설정이 관객의 거부감을 샀다는데, 직접 관람하지 못해 뭐라 말하기 어렵다. 다만, <한글의 발명>이라는 뛰어난 책을 쓴 원로교수가 그런 설정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아, 관계자들은 매우 억울하지 않을까 싶다. 실수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감독은 ‘훈민정음 창제설 가운데 하나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라는 자막과 관련하여, “저로서는 넣고 싶지 않은 자막일 수 있으나, 그 누구도 역사에 대한 평가 앞에서는 겸허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넣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중립적 발언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존경의 대상인 세종의 역할이 왜곡되었다고 느낀 관객에게는, 영화의 설정이 허구가 아니라 감독의 신념이라고 인정하는 메시지가 되고 말았다. 

영화의 대중적 영향력이 커진 만큼 관객의 영화에 대한 영향력도 극대화되고 있다. 이제 영화를 선보일 때 관객을 어떻게 유혹하느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의견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고, 생겨나더라도 널리 전파되지 않게 하여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세월호 사건을 다룬 영화 <생일>은 소재의 민감성을 감안해 배우들과 감독이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으려 극도의 주의를 기울였다. 가장 비수기에 개봉하여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으나, 구설수 없이 몇 주간 흥행 1위를 지켰다. 영화의 진정성이 바탕이 되었으나, 메시지를 관리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한 결과물이다. 앞으로 상업영화의 개봉과정에서 메시지를 빈틈없이 관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것이다. 

영화마저 이럴진대, 현대정치는 본래부터 메시지의 전쟁이다. 큰 선거의 캠프에서는 메시지 관리가 알파이자 오메가다. 국제정치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제외조치를 둘러싼 한·일 간 분쟁이 격화된 며칠 사이에 오간 메시지에서는, 일본 측의 메시지 두 개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우선 일본 외무성 부대신이 TV 프로그램에서 한 말이 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정부의 조치를 비판하면서 ‘적반하장’이란 표현을 쓴 것을 지적하며, 그런 품위 없는 말을 쓰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며 무례하다고 말했다. 차관급 인사가 외교 상대국 정상의 발언을 비난한 것은 외교 결례이므로, 외교부는 일본에 강한 유감과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그의 발언은 매우 유감스럽지만, 왜 그가 ‘적반하장’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는지 의문이 생겼다. 한국에서 관용적으로 쓰는 ‘적반하장’은 아주 수위가 높은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어에 미숙한 나로서는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한자어 본래의 뜻이 강한 뉘앙스로 전달된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극우인사라는 그는 이미 어떤 의도를 가졌겠지만, 일본인 입장에서는 거칠다고 시비할 핑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경제산업상이 “한국이 냉정히 대응하라”고 주문했다는 말도 어색하게 들렸다. 아니, 지금 상황에서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드는 격으로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무언가 일본 관료들이 한국을 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은 이것이 일본 내각에 포진한 역사수정주의자들의 논리 그리고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면서 일본 경제를 추격하는 한국에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동시에 그들은 한국이 국제규범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이고, 감정에 치우쳐서 규범을 무시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우리의 말과 행동의 배경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내정치용이 아니라 높은 관심과 함께 전 세계로 전파될 메시지들은 어차피 전혀 다른 수준에서 정제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쓸데없는 빌미를 줄 필요 없다는 것은 정부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베 정부가 충격적인 조치에 나서는 것을 정부가 미리 막을 수 있었는지, 아니면 불가피했는지는, 외교에 대해 문외한이고 막후에서 진행된 경과를 모르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잘잘못을 떠나, 이제는 시민과 정부를 믿고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다.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경제적 힘의 차이는 어쩔 수 없더라도, 정부의 메시지는 일본보다 나았으면 한다.  

단호한 결의의 메시지도 좋지만, 사활을 걸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한 메시지는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한국이 당당한 민주주의 국가이고, 엄격한 법치주의 국가라는 것을 전달해야 한다. 한국 안의 다른 목소리에 대한 존중을 통해 지혜를 더하는 다원주의도 보여주었으면 한다. 목청을 높이기보다는 시쳇말로 뼈를 때리는 논리와 증거로 무장했으면 한다. 역사 앞에 겸허하고 진실한 태도가 배어났으면 한다. 약자와 소수자를 옹호하는 인권국가라는 것도 드러났으면 한다. 일본정부와 일본국민을 적절히 구별했으면 한다. 민족의 자긍심을 잊지 않되, 현실에 대한 분별력이 흐려지지 않았으면 한다. 자유무역과 호혜평등을 통해 세계가 번영할 수 있다는 확고한 철학이 담긴 메시지를 띄웠으면 한다.

앞으로 수많은 난제가 있을 것이며, 힘의 논리가 얼마나 엄중한지 처절하게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 담대하면서도 냉정하고, 단결하면서도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며, 시련 속에서도 국제사회의 규범을 지키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난관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의 보답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 첫걸음은 격조와 철학이 살아있는 정부의 메시지에 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이 한국을 폄하하며 내세우는 이유를 생각하면 그것이 더욱 절실하다.

<조광희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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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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