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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칼럼이 실릴 무렵이면 당선자가 결정되었을 것이다. 주위에는 여당도 싫지만, 야당도 마땅치 않다는 푸념이 가득하다. 그 와중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위선, 무능, 내로남불이란 문구가 어느 정당을 연상시킨다며 야당의 사용을 금지했다. 야당이 선관위에 항의하는 촌극이 벌어졌는데, 정말로 항의해야 할 정당은 여당이 아닐까.

현재의 여당은 진보적이고, 야당은 보수적이라는 게 보통의 생각이다. 진보적이라는 건 무엇일까. 역사에 방향성이 있다는 관점에서 역사의 발전을 지지하는 태도를 말하며, 진보를 지향하는 게 올바르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변화를 지지하면 진보적이고, 안정을 지지하면 보수적이라는 사회심리학적 관점도 있다. 이때에는 변화의 내용과 속도가 적절한지에 따라 보수가 올바른 방향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바라는 정치는 ‘국민을 깊이 사랑하되, 변화와 안정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만 다른 정치세력’이 성숙한 토론을 통해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 기대는 처참하게 배반당하고 있다.

나는 ‘다른 모든 것이 같다면’ 진보를 지지한다. 문제는 ‘다른 모든 것이 같다면’에 있다. ‘다른 모든 것’에 포함되는 대표적 가치는 역량과 진정성이다. 그동안 여당의 역량에는 의문이 많았지만, 적어도 진정성은 있다고 보았다. 이제는 진정성이 없다고 선관위가 공인할 지경이 됐다. 진정성은 표방한 원칙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해도 감수할 때 드러난다. 여당은 어떤 불이익을 감수했는가. 위성정당과 가덕도와 자신의 부동산을 두고 어떤 선택을 했는가. 원인을 제공한 선거에 규정을 고쳐 후보를 낸 것은 어떠한가. 폼은 잡고 싶지만, 불이익을 감수할 생각은 없다. 진보와 역량은 독립적인 가치지만 진보와 진정성은 한 묶음인 줄 알았는데, 이제 진보와 진정성이 무관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암울하지만, 기회일지도 모른다. 성향을 떠나 전략적 투표를 하는 유권자가 늘어날수록 민주주의의 힘은 커진다. 어느 당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는 강한 지지층이 그 당에도 나라에도 도움이 된다.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는 강한 지지층이 나라의 이익과 배치되고, 장기적으로 그 당에도 독이 된다.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는 말이 있다. ‘옳다고 미리 정해진 건 없으므로, 상황에 따라 해법을 찾는 것’을 말한다. 배를 타고 가려는 목적지가 유럽일 때, 우리가 한반도에 있다면 서쪽으로 가야 한다. 미국에서 출발한다면 동쪽으로 가야 한다. 우리가 어디에서 떠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동쪽으로 가야 한다고 해서 바로 직진할 수 없다. 바닷길을 따라야 한다. 만일 수에즈 운하가 막히면 희망봉을 돌아야 한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바닷길은 어디인지, 돌발상황은 없는지에 따라 다른 것이다.

진보를 지지한다고 왼쪽으로만 가는 것, 보수를 지지한다고 오른쪽으로만 가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진보를 언제나 지지하는 것이 역사의 발전과 일치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시대는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저물었다. 진보성을 제외한 역량, 진정성, 윤리의 측면에서는 거대 정당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틀에서 펼칠 수 있는 정책의 옵션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정책적 차별성도 제한적이다.

나는 앞으로 편히 투표하려 한다. 당선 가능성이 있으면서 진보를 지향하는 쪽을 눈여겨볼 것이지만, 만일 그쪽이 무능하고 진정성이 없다면 기꺼이 다른 쪽을 살펴볼 생각이다. 보수 유권자에게도 권한다. 보수가 무능하고 부패하다면 과감히 진보에 투표하라. 전통적 지지를 벗어나 훨씬 역동적인 투표를 하자. 그것을 통해 기득권 양당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심어주어야 정치가 발전한다.

정치인과 정당을 너무 사랑하지도 너무 미워하지도 말자. 어차피 그들 간의 차이는 그들과 국민 간의 차이에 비하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스포츠팬이 더 불행하다. 이길 때의 기쁨보다 질 때의 괴로움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거리를 두고 즐기자. 반칙을 안 하고 더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팀을 그때그때 응원하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한 푼 안 들이고도 삶의 질이 개선된다. 이제는 그래도 되는 시대, 아니, 그래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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