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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때문일까. 모란공원 하면 봄이 느껴진다. 지난 주말, 그곳엔 봄기운이 완연했다. 전태일 열사의 무덤에 햇살이 내리고, ‘노동해방’ 머리띠를 두른 흉상에도 봄볕이 드리운다. 바로 옆은 지난달 15일 세상을 뜬 백기완 선생의 묘소다. 뗏장 사이로 붉은 흙이 드러난 봉분 앞에 프리지어·국화 꽃송이가 수북하다. 그 뒤쪽은 이소선 여사의 무덤이다. 그는 생애 전반은 전태일의 엄마로 살았지만, 후반부는 아들의 유지대로 ‘노동자의 어머니’로 헌신했다. 열사의 묘 오른쪽 뒤편에는 3년 전 산재로 숨진 김용균 노동자가 잠들어 있다. 전태일, 이소선, 백기완, 김용균.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네 사람이 반경 20m의 한 묘역에서 영면 중이다.

백기완 선생이 전태일 열사와 나란히 묻힌 것은 의미가 각별하다. 재야인사, 통일꾼, 시인, 민중사상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선생에게 가장 어울리는 호칭은 역시 ‘노동자의 벗’이다. 특히 노동자들과 함께한 ‘최후의 20년’은 선생의 화양연화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용산 철거민 투쟁,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의 크레인 농성, 쌍용자동차 복직 투쟁 등 2000년 이후 노동운동 현장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선생은 파업현장과 농성장을 돌며 ‘정리해고 중단하라’ ‘노동자를 죽이지 말라’고 외쳤다. 노동자들이 죽어갈 때에는 영결식과 추도식장을 찾아 유족과 동료들을 위로했다. 노동 열사들이 묻힌 모란공원도 숱하게 다녔다. 공원 내 노동자 무덤 곳곳에는 백기완 선생의 글귀를 새긴 빗돌이 세워져 있다. ‘너/ 어디서건 눈을/ 부라려/ 해방의 역사를 빚고 있구나/ 용균아’(김용균), ‘종배야/ 날마다 먼동이 트거들랑/ 역사와 함께 일어나거라’(김종배)…. 선생은 ‘노동해방’을 마지막 글귀로 남길 정도로 노동자의 편에서 싸웠다.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의 묘 옆자리는 50년간 비어 있었다. 공원묘지가 만장이 돼 저마다 숨어 있는 묫자리를 찾아나섰을 때마다 누구한테도 내어주지 않았던 공간이다. 전태일 열사의 삶과 죽음은 웬만한 사람의 접근을 허용치 않을 만큼 무겁다. 그런데 백기완 선생이 돌아가시자 이구동성으로 그 빈자리를 지목했다. 열사가 선생을 위해 예비해둔 것 같았다. ‘노동자의 대표’ 전태일과 ‘노동자의 벗’ 백기완은 그렇게 죽어서 만났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은 1969년 조성된 사설공원묘지다. 100만평의 야산 전체가 묘지공원인 이곳이 특별한 것은 민주열사 묘역이 있기 때문이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모란공원에 안장된 이후 그의 묘 주변으로 민주인사, 노동자의 무덤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수십 년간 열사들의 무덤이 골짜기를 채우면서 자연스레 ‘민족민주열사 묘역’이 만들어졌다. 현재 이 묘역에는 민족민주열사 150여명이 안치돼 있다. 이 가운데에는 김근태·노회찬 의원과 같은 정치인, 문익환·문동환·계훈제 선생과 같은 재야인사, 독재권력에 희생된 박종철·한희철·우종원 등 대학생도 적지 않지만 가장 많은 계층은 노동자들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물꼬를 튼 전태일에서 김진수·김경숙·박영진·김말룡·김용균에 이르기까지 이곳에 묻힌 노동운동가와 열사는 근 30명에 달한다. 광주 5·18묘지가 ‘민주화의 성지’라면 모란공원은 ‘노동운동의 성지’다.

노동 열사들의 묘소를 참배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무덤이 많아서가 아니다. 비문을 읽으며 망자들의 고통스러운 삶, 안타까운 죽음을 상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15세 나이에 수은중독으로 죽어간 문송면, 이황화탄소에 중독돼 숨진 원진레이온 노동자 김봉환,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비정규직 김용균은 산재의 참혹함을 일깨운다. 민주노조 운동이 한창인 1980~1990년대 사측과 공권력의 노조 와해에 맞서 목숨을 끊은 젊은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죽음을 기억하는 일은 힘들지만, 참배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이날에도 가족 또는 친구들로 보이는 몇 팀이 삼삼오오 무덤에 조화를 바치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 한국의 성장과 번영은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이뤄졌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지만 노동 조건은 그에 걸맞지 않게 열악하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 구조는 여전하고 산재로 매일 6명이 스러져 간다. 대다수 비정규직은 노조 할 권리조차 없다. 가파른 노동의 현실 속에서 모란공원을 찾는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이 땅의 노동상황이 열사들을 깨우기 때문이다. 비석 곳곳에 걸린 ‘노동해방’ ‘단결투쟁’ 리본들이 이를 말해준다. 모란공원은 산 자가 죽은 자를 위로하고, 죽은 자가 산 자를 끌어주는 연대의 장소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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