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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하려고 하는데, 타이틀을 뭘로 할까?” 지인이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틈틈이 논문을 발표하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해온 그가 유튜브의 길을 가겠다는 게 의아했기 때문이다. 내 침묵에 아랑곳없이 그는 말을 이어갔다. “이젠 유튜브를 외면할 수 없을 것 같아. 잘하면 수익도 생기고….”

유튜브가 대세다. 남녀노소, 이념,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 초등학생의 대다수는 스마트폰을 들면 유튜브부터 켠다고 한다. 어른이라고 다를까. 우려되는 점은 독서와 글쓰기의 위축이다. 지난해 출간된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김성우·엄기호)는 유튜브 시대에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대산문화’ 최신호가 특집으로 ‘유튜브가 삼킨 미래’를 내건 것은 그 연장선이다.

유튜브가 정보와 지식, 오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책과 다르지 않다. 반면 정보 습득 방식은 차이가 크다. 유튜브 보기가 감성적이고 수동적이라면 책읽기는 비판적이고 반성적이며 관조적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유튜브가 문자의 활용 능력 및 독서력 등 문해력(리터러시)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책과 유튜브를 택일의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 동영상으로 독서지도를 하고 서평을 올리는 북튜버의 활동에서 보듯, 유튜브는 리터러시의 방편일 수 있다.

유튜브 시대 위기에 처한 것은 책 그 자체가 아니라 ‘깊이 읽기’이다.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영상이 활개치는 곳에서는 책을 펼쳐 읽기에 빠져들지 못한다. 깊은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찾는 시간을 가질 수도 없다. 유튜브에서는 ‘깊이 읽기’가 주는 통찰과 성찰, 공감 능력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유튜브 시대에 책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깊이 읽기’의 성소인 도서관을 주목해야 한다.

‘읽는 뇌’ 분야의 권위자인 매리언 울프는 <다시, 책으로>에서 “디지털 세계의 엄청난 정보들을 획득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문자가 가져다준 비판적 사고, 공감과 이해, 개인적 성찰 같은 본성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며 그 대안으로 깊이 읽기를 권한다. 재일작가 서경식에게 책읽기는 ‘도서관에서의 읽기’이다. 그는 “간단히 답을 얻을 수 없는 깊은 질문에 침잠하면서 끝없는 문답에 몰두”하는 독서는 도서관에서만 가능하다며 ‘도서관적 시간’을 되찾자고 제안한다. 사회학자 엄기호 또한 읽기·쓰기의 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데, 도서관이나 서점, 평생교육 프로그램 등을 얼마나 잘 갖추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특히 도서관은 활자의 전통을 지켜가는 ‘오래된 미래’이다. 그것은 순간접속만으로 정보를 획득하는 디지털 시대에 책에 대한 진입장벽을 허물며 ‘깊이 읽기’를 돕는다.

현재 국내에는 1300여곳의 공공도서관이 있다. 초·중·고 및 대학 도서관, 아파트·주민센터의 작은도서관을 합치면 2만개에 달한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적은 것도 아니다. 문제는 ‘책 읽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느냐이다. 시민이 주로 찾는 공공도서관의 경우 지역 편차가 매우 크다. 인구 53만명인 서울 강남구는 도서관이 13개나 되지만, 그 절반이 살고 있는 부산 남구는 2개뿐이다. 장서 규모도 들쭉날쭉해 100만권을 육박하는 도서관이 있는가 하면 1만권도 못 갖춘 곳도 있다. 사서 없는 공공도서관은 20곳이 넘는다.

도서관의 지역 불균형이 심각하고 장서·사서직원 규모가 제각각인 것은 운영 주체가 광역 및 기초단체, 교육청 등으로 나뉘어 도서관 인력 및 재원이 합리적으로 배분되지 못한 탓도 크다. 도서관 행정 역시 문체부, 교육부, 시·도교육청, 지자체 등으로 분산돼 있다보니,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 교육청 도서관과 지자체 도서관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운영되는 곳도 있다. 도서관의 난맥상은 산불 진화 업무가 산림청과 소방본부로 나뉘어 우왕좌왕하던 소방청 설립 이전 상황을 연상시킨다. 소방업무가 소방청으로 통합됐듯이 ‘도서관청’을 신설해 행정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연간 4억5000만명에 달하는 도서관 방문자의 편익을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영국 국립도서관, 조선의 규장각처럼 과거 도서관은 한 나라 문명과 국력의 표상이었다. 오늘날 도서관의 역할은 민주주의 훈련이다. 도서관에서의 깊이 읽기는 교양·지혜뿐 아니라 배려, 공감, 환대 등 민주주의 가치를 고양시킨다. 민주사회일수록 시민의 문해력이 뛰어나고 독서량도 많다. 자본의 논리를 좇는 유튜브와 달리 도서관의 본질은 인간과 민주주의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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