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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실종됐다. 청중 앞에서 열띤 강의를 펼치는 유명 강사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인문강좌·탐방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도서관·박물관을 찾는 이들의 발길도 끊어졌다. 대중인문학의 ‘열풍’이 식어가고 다시 ‘위기’가 도래하는 걸까.

서울 강남에서 시민 대상 인문강좌를 운영했던 고전학교가 최근 문을 닫았다. ‘고전을 통한 성찰과 치유’를 내세우며 지난 3년간 품격 있는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코로나19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서울 사직단 앞에서 역사 대중화 작업을 선도해온 푸른역사아카데미도 간판을 내렸다. 지난봄 서울 서촌 생활을 접고 충남 공주로 근거지를 옮긴 길담서원은 아직도 서원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암중모색 중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인문학의 풍경이 크게 달라졌다. 제일 큰 변화는 대면 인문학 공부와 독서동아리 활동이 위축됐다는 점이다.

인문학 공부가 변신하고 있다. 전례 없는 감염병으로 한때 휘청거렸지만, 다시 일어서고 있다. 대면·오프라인 강의 대신 비대면·온라인 강좌가 대안으로 등장했다. 첨단 정보기술 활용에 대중인문학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마포의 대안연구공동체는 지난 3~4월 코로나19로 강좌를 중단하며 임차료를 내지 못할 정도로 타격을 받았으나 지금은 평년 수준으로 회복했다. 미술사 등 일부 강좌는 회원 수가 늘었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강좌를 이어가고 있는 인문단체로는 대안연구공동체 이외에 인문학당 상우, 문탁네트워크, 남산강학원, 수유너머104 등이 꼽힌다. 이들은 줌(ZOOM)·유튜브 등 정보기술을 활용해 언택트 시대에 인문학 공부의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 온라인 강의는 대면 강의에 비해 소통 능력이 떨어지지만, 시공간의 제약이 없어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다. 특히 줌 강좌는 강사와 수강생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데다 그림·텍스트 등 교육 자료를 현장 강의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어 날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남산강학원·인문학당 상우는 유튜브 동영상과 책을 결합한 새로운 작업을 실험 중이다. ‘북튜브’ 출판사에서 펴낸 가족특강 시리즈는 책 표지에 유튜브 인터넷 주소(url)와 QR 마크를 함께 넣어 책을 읽으면서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온라인 강좌는 시민사회 인문단체뿐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 지원 인문학 사업에도 확산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역 도서관과 함께하는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은 답사·탐방 프로그램이 불가능해지면서 참여율이 30% 이상 줄어들었다. 그러나 지난 8월 시작한 온라인 인문심화강좌 ‘도서관 지혜학교’는 전국 도서관 70여곳이 참여할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자유시민대학 역시 최근 모든 인문학 강좌를 온라인 비대면 강의로 전환하면서 코로나 충격에서 벗어났다. 처음에는 유튜브를 활용한 실시간 강의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줌 강의나 서울시 평생학습포털을 통한 온라인 동영상 수업으로 발전했다. 강좌 수는 코로나 이전에 비해 다소 줄었지만 모든 강좌가 조기 마감될 정도로 참여율이 높다. 서울자유시민대학은 시민대학 수강생 모임인 ‘시민연구회’, 직장인 대상 ‘퇴근길 시민대학’ 등으로 온라인 학습을 확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과거와 같은 삶에서 벗어나 대안 사회를 모색해야 한다. 변화와 위기 속에서 대중인문학의 변신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불러온 언택트 사회에서 온라인을 활용한 소통으로 인문학이 더 풍성해졌다. 서울의 인문강좌가 온라인을 통해 지역·해외로 확장되고 대면 강좌에서는 불가능한 마니아 대상의 고급강의가 늘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이 인간관계에 대한 학문이라고 할 때, 언택트 사회에서 어떻게 연대하고 공존할 것인가는 과제다. 코로나 시대의 인문학 공부는 더 많은 상상이 필요하다.

교육부는 제15회 인문주간(10·26~11·1)의 주제로 ‘코로나 시대, 인문학의 길 - 함께, 새롭게, 깊게’를 내걸었다. 인문주간은 전국 대학·연구소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인문학 축제로 코로나 시대를 맞아 온·오프 강의는 물론 가상현실 등 첨단기술을 이용한 전시·콘서트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프랑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코로나 이후에는 타인보다 스스로에 몰두하면서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학 공부 역시 언택트 시대에 맞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대면·비대면을 병행하며 ‘따로’ 그리고 ‘함께’할 때 뜻밖에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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