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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상 어휘를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특정한 분야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는 어느 정도 강제성을 띠고 바꿀 수 있다. 2011년 대한의사협회에서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으로 개칭하기로 확정한 것이 그 한 예이다. 그리스어 ‘skhizo(깨짐)’와 ‘phren(마음)’을 합성한 어휘가 ‘schizophrenia’이니, ‘정신분열’로 번역한 것도 자연스럽다. 다만 의미 영역이 너무 넓고 부정적이어서 사회적 편견을 야기할 수 있다. 환자 및 가족들의 염원에 부응하여 유관 학회를 중심으로 병명개정위원회를 결성, 3년여의 연구와 설문 끝에 결정된 명칭이 조현병이다. ‘조현(調絃)’은 악기의 현을 조율한다는 뜻으로, 마음의 긴장과 이완을 조율하는 기능에 문제가 생긴 질환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이다.

조선 후기의 김조순은 조현병에 걸린 이웃집 한씨의 삶을 담은 전기를 썼다. 한씨는 허공에 고함치며 누군가를 뿌리치고 욕하는 증상을 보였으며, 심지어 훈련대장을 지내던 김조순에게 와서 자신을 괴롭히는 귀신을 쏘아 죽여야 하니 포수들을 지원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하지만 증세가 발작하려 하면 집으로 달려가 혼자 소리 질러 쫓을 뿐이었고, 평소에는 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남에게 충직하게 말했으며 늘 신의를 중시하였다.

김조순은 그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기는 해도, 마음 자체에 병이 들어서 인륜도 구분 못하고 괴상한 언행을 일삼는 광자와는 다르다고 했다. 맹자에 의하면, 마음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내리막길을 달릴 때처럼 몸의 기세를 마음이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씨의 마음이 간혹 조율 기능을 잃고 넘어지는 것은 기세에 병이 들어서 그런 것이지 마음에 병이 든 것은 아니라는 게 김조순의 진단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함부로 굴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기만하며 온갖 속임수가 난무하는 세태를 보며 김조순은 이런 생각에 이른다. “멀쩡해 보이는 이들이야말로 한씨가 소리 질러 욕하고 쫓아내려는 귀신이 아닐까? 그렇다면 한씨의 증상은 병이 아니로구나.” 긴장과 이완이 조화를 잃어 여기저기 끊어지고 형편없이 늘어지는 일이 반복되는 오늘, 진정 마음의 조율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찬찬히 돌아볼 일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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