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은 안보 정당을 자부한다. 그런데 그 ‘안보’의 대상이 수상하다. 나경원 전 한국당 원내대표의 지난달 27일 입장문을 보자. “2018년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열린 1차 정상회담이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3차 회담마저 총선 직전에 열릴 경우 대한민국 안보를 크게 위협할 수 있다. 금년 방한한 미 당국자(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에게 그러한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 이 입장문은 ‘총선 전 북·미 정상회담 개최 미국에 자제 요청’ 파문이 번지자 ‘우려’했을 뿐 ‘요청’하지 않았다고 해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요청한 것이 사실임을 확인해준 셈이다.

입장문의 맥락은 선거에 눈이 멀어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회담마저 반대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당이 일본에 총선 전에 경제 보복을 풀지 말라고 요청하고 나설지도 모르겠다. 그의 입장문은 큰 파문이 일었지만 잇따라 불거진 현안들에 밀렸다. 그러나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 맞나”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틀린 말을 했느냐”고 맞받았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맞는 말이 별로 없다.

따져보자. 첫째 호도. 2018년 지방선거에서의 한국당 참패는 정상회담보다 한국당 탓이 훨씬 컸다. ‘탄핵 세력’에 표를 줄 유권자도 많지 않았지만 탄핵으로부터 거듭나지 못한 한국당 자체가 표를 끌어모을 매력이 없었다. 둘째 억지. 북·미 정상회담이 총선 전에 열리면 한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판단은 근거가 없다. 최대 안보 현안인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회담이 어떻게 안보를 위협한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총선 후에 회담이 열리면 안보에 도움이 되는가. 셋째 자기모순. 그의 입장은 “북핵은 안보에 최대 도전”이라는 황교안 대표의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나 전 대표의 논리대로라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나 선거는 병행하기 어렵다. 예컨대 2018년의 경우 지방선거가 치러진 6월13일 이전에 남북정상회담 2회, 북·미 정상회담 1회 등 총 3회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이 얼마인지 그는 밝히지 않았지만 ‘선거 직전’이라고 밝힌 점을 감안해 2개월 정도로 잡아보자. 그렇다면 그해 1~4월에 3개의 정상회담을 열었어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정상회담 성사의 어려움과 회담 준비기간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회담을 임의로 선거 뒤로 미루는 것도 비현실적인 일이다. 이 같은 사정은 내년 4월 총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거와 정상회담은 중대한 행사이기 때문에 경중과 선후를 따질 수 없다. 그런데 그의 입장문은 북핵 해결보다 총선을 중시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정파적 이익을 위해서는 중요 안보 행사도 연기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전 대표만이 아니다. 안상수 의원은 지난 9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에게  “미국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으니 북한과 종전선언을 하면 안된다”고 요청했다. 한국의 국회의원인데 왜 한반도 냉전 해체를 의미하는 종전선언에 반대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안 의원이 한국의 안보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을 더 중시한다고 이해해도 될는지 궁금하다. 이런 행태는 한국당이 내세우는 안보의 대상이 국민이나 국가가 아니라 바로 한국당 자신임을 증거한다. 그런 점에서 나 전 대표의 입장문은 한국당의 정체성 고백이요, 커밍아웃인 셈이다. 한국당은 안보 정당이라고 내세울 게 아니라 ‘자기안보 정당’으로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바란다.

사실 한국당은 주요 선거 때마다 이른바 북풍을 공작해온 보수의 DNA가 내면화된 정당이다. 1987년 대선 하루 전날 일본과 갈등을 벌이면서까지 ‘김현희 압송’을 강행하고, 1987년 대선에서는 북한에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한 ‘총풍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보수정권과 보수 정당이 한국당의 모체다. 현재도 당리당략을 위해 모든 것을 정쟁화하다보니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라는 대의마저 치지도외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쯤되면 한국당에 안보를 맡기면 위험천만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한국당이 미국의 반트럼프 및 반북 세력,  일본 아베 정부와 손을 잡을 경우 한반도 정세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는 군비경쟁에만 몰두하는 것은 진정한 국가지도자가 취해야 할 건설적 자세가 아니라고 설파했다. 지도자는 자국의 이익과 타국의 이익이 타협 가능한지를 판단하고 상호조정과 타협에 의해 전쟁을 회피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당과 소속 의원들에게 묻는다.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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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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