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가까이 수백만명이 서초동과 광화문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분열은 심화됐다. 분노와 요구만 쏟아냈을 뿐 대화와 소통은 없었던 탓이다. 물론 검찰개혁의 시동이 걸린 것은 성과다.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이 되지 않도록 매의 눈으로 감시해야 한다. 이제 정치가 작동할 시간이다. 겨냥점은 광장의 구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국 수호 대 조국 퇴진’. ‘서초동 촛불집회 참석자’들은 조국 장관을 무차별적 검찰 수사의 피해자이자 검찰개혁 적임자로 본다. 불공정과 특권의 당사자로 드러났지만 ‘나쁜 검찰’을 잡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먼지털기식 수사로도 불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은 만큼 이만하면 깨끗하다는 생각과, 그가 주도하는 검찰개혁의 결과로 평가하자는 주장이 ‘수호’ 구호에 힘을 싣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극으로 몰고 간 ‘논두렁 시계’ 데자뷔도 구호에 반영돼 있다. 그러나 서초동 촛불시민이 아무리 많아도 조 장관의 도덕적 하자를 씻어줄 수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범위한 반대 여론에도 조 장관을 임명한 사실도 지울 수 없다. 이는 진보 정치와 도덕 사이의 기존 함수관계를 뒤흔들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이다.

광화문 집회 참석자들은 딸의 입시 과정상의 특권과 불공정만으로도 조 장관은 자격이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고상한 척하며 세상을 꾸짖는 ‘이중적 언행’을 해왔다며 오금을 박는다. 여기까지는 이들의 말이 옳다. 공평함은 국민 모두가 추구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초동 촛불집회를 공격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검찰 수사에 대해 막무가내식 으름장을 놓는 행태 역시 마찬가지다.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범죄사실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부실 아니면 봐주기 수사를 한 것”(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이라고 울타리를 치니 답답한 노릇이다. 

‘검찰개혁 대 문재인 탄핵’. 촛불의 힘은 철옹성 같던 검찰을 움직일 만큼 강력했다. 검찰은 지난 1일 특수부 축소 등 3개항의 자체 개혁안을 내놓았다. 이어 포토라인·심야조사 폐지를 속속 발표했다.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조국 수사’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일 터이다. 그럼에도 종합 개혁안을 마련해 한번에 발표하지 않고 며칠마다 하나씩 발표하는 행보는 눈에 거슬린다. 조 장관의 법무부와 기싸움을 벌이며 시민에게 지속적으로 개혁하고 있다는 인상을 각인시키려는 꼼수 아닌가. 모처럼 자체 개혁에 나선 의미를 퇴색시킨다. 

광화문 집회 참석자들은 검찰의 조국 수사를 칭송한다. 적폐수사 때까지만 해도 검찰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다. 그런 점에서 한국당 의원들을 겨냥한 패스트트랙 수사가 본격화될 때도 같은 소리를 할지 지켜볼 일이다. 한국당은 조 장관 부인 정경심씨와 조국 일가가 검찰개혁의 첫 수혜자라고 하지만 실상은 마지막 피해자에 가깝다. 70곳 압수수색과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썼기 때문이다. 아마도 검찰개혁의 첫 수혜자는 패스트트랙 수사를 받는 한국당 의원들이 될 터이다. ‘문재인 탄핵’ 구호는 평가할 가치가 없다. 국정농단이나 권력형 비리도 없는 상황에서 너무 나간 구호이기 때문이다. 

사실 검찰개혁의 중요성은 조국 수호냐 사퇴냐는 차원을 넘어선다. 검찰은 오랫동안 사회 부패 고리의 한 축이자 부패 구조를 심화시키는 핵심 역할을 해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제 식구 감싸기, 전관예우, 재벌 봐주기, 사업주 편들기, 노동자 핍박 등 검찰이 정의를 훼손하고 굴절시켜온 사례는 차고 넘친다. 아마 한국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의 논리가 여전히 통하는 몇 안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일 것이다. 막강한 힘을 구축한 검찰은 스스로 개혁하지 않았고, 외부로부터 개혁을 요구당할 때마다 강력히 저항해 무산시켰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검찰개혁은 검찰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분야의 부패와 부조리를 없애는 거대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서초동 촛불’이 검찰을 제대로 저격한 셈이다. 

이제 광장의 시간은 갔다. 지금부터는 광장에서 외쳤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조 장관 진퇴 문제부터 검찰개혁, 교육뿐만 아니라 건강, 수명, 특권과 불공정을 낳는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을 모두 손보는 대공사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선두에 서야 한다. 여기에는 시민도 참여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광장의 분노는 모두 가짜였다는 말이 된다. 서초동이든 광화문이든 지난 한 달 광장이 요구한 것은 다름 아닌 특권과 반칙이 없는 공정한 사회였다고 믿고 싶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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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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