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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회담차 한국을 찾은 미국 국무·국방장관이 청와대를 예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에게 “한·일관계 복원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11년 만에 미국 주요 장관들이 방한한 진짜 목적이 한·일관계 복원임을 시사하는 장면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구축 중인 다자 연대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주요 장관들의 첫 순방지로 정했다는 분석대로다. 며칠 뒤 서욱 국방장관도 “한·일 안보협력이 가치 있는 자산”이라고 했다. 한·일의 불화가 북한 위협보다 더 걱정이라던 바이든 행정부로선 흐뭇해할 만한 상황 전개이다.

문제는 한·일이 미국의 한마디에 쉽사리 풀릴 사이인가 하는 점이다. 한·일관계는 갈등이 단단히 구조화돼 있다. 두 가지다. 우선 양국 간 힘의 차이가 현저히 좁혀졌다. 1965년 한·일 수교 당시 100 대 1이 넘던 국력차는 현재 2.5 대 1이다. 2010년대 초에는 한국 전기·전자산업의 기세에 ‘가전왕국’ 일본의 기업들이 무너졌다. 2019년 무역분쟁에서도 한국이 밀리기는커녕 일본 부품기업들만 내상을 입었다. 일본의 재영저널리스트 기무라 마사토(木村正人)가 지적하듯 한·일관계도 신흥국과 패권국이 다툼을 벌이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진 듯 보인다. 미국이 중국의 굴기에 위협을 느끼듯 일본도 자신의 턱밑까지 추격해온 한국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둘째, 탈냉전 이후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달라졌다. 정권에 따라 부침은 있지만 한국은 북·미관계 개선, 한·중관계 강화를 토대로 한반도 평화를 추구해온 반면, 일본은 동북아 질서의 현상유지를 희망한다. 평창올림픽 때 문 대통령을 만난 아베 총리가 “한·미 연합훈련을 예정대로 하라”고 ‘간섭’한 것은 한반도 화해가 불편한 일본의 심경을 드러낸다. 한반도의 긴장은 일본의 군사력 확대에 필요조건이다. 북한에 선제 미사일 공격을 하겠다는 ‘적기지 공격능력’ 구상도 이런 긴장의 산물이다. 과거사 문제가 없더라도 양국이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10여년간의 호시절로 복귀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초기 극반일에서 유턴해 위안부 합의를 졸속 체결한 박근혜 정부가 탄핵되면서 문재인 정부는 ‘숙명적 반일’일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반일’의 절반은 박근혜 때 잉태됐다. 여기에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더해졌다. 노무현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과 대법원 판결 간의 논리적 격차를 메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베 정권은 문재인 정부가 주춤거리는 틈을 타 ‘정경분리’를 넘어선 수출규제 도발로 한국을 굴복시키려다 실패했다.

임기를 1년여 남겨둔 문재인 정부가 한·일관계 복원에 부쩍 고삐를 죄고 있다.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에 발목잡혀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신년 기자회견에선 “2015년도 위안부 합의가 공식 합의였음을 인정한다”고 해 관련 단체들을 아연케 했다. ‘박근혜의 롤러코스터’ 못지않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대북 발언권이 커진 일본과의 관계를 푸는 것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요긴하기 때문임을 머리론 알지만 정서적으론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일본 입장에서 봐도 한·일관계를 한반도 평화의 소품 다루듯 하는 한국의 ‘도구주의’에 빈정 상할 것이다. 버티는 일본에 더 숙이고 들어가다 ‘외교참사’라도 날까 걱정이다.

대일정책은 안팎에 청중이 많다. 일본에 콤플렉스가 없는 청년세대에게 이런 화해 시도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가해자가 발뻗고 자는데, 피해자는 안절부절못하는’ 도착(倒錯)도 불편하다. 한·일관계는 일본 기성세대가 한국의 굴기로 이뤄진 ‘뉴노멀’ 상태를 수용하거나 일본의 세대교체가 된 뒤에야 풀릴 문제다. 북·미의 태도로 미뤄 한·일 화해가 한반도 평화와 한국의 대북 주도권 확보를 보증할 것 같지도 않다. 남은 임기 동안 문재인 정부가 할 일은 섣부른 화해 시도보다 의연하게 상황을 관리하는 ‘전략적 인내’다.

굳이 임기 내에 하겠다면 한국인의 존엄을 최대한 지키는 방식이어야 한다. 과거사 공방에서 거슬리는 것은 ‘돈 문제’가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이다. “돈 받아내려고 과거사를 물고 늘어진다”는 일본 우익들의 조롱이 지겹지 않은가.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되 물질적 배상 요구는 포기하는 해법(이원덕 국민대 교수 제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아시아의 독일’이 되길 거부해온 만큼 그 기회를 영원히 거둬들이는 의미도, 일본 우익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효과도 있다. 일본이 사죄하지 않는다면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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