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일이라고 다 지나간 건 아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과 똑같은 작동 원리이다. 지난 일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처럼 그것은 무시로 나타나서 마음의 따귀를 느닷없이 갈기기도 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했는데 꽃 앞에서 생각나는 일들도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나날들에서 모두 내 잘못을 미끼로 벌어진 일이겠지, 마음에 두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기가 무섭게 또 나타나는 스산한 기억들. 결심하는 건 나의 소관사항이되 결심은 내 영역이 아닌 것. 그래도 안심이다. 그 또한 아무리 까불어 보았자 15초 이상을 머무르지 못한다. 마음의 구조가 본디 그렇게 생겼다.

ⓒ이해복

아주아주 오래전, 어린이 연속극에서 본 장면이 쉬이 잊히지 않았다. 동무들과 다투고 온 손녀가 무엇이 그리도 분한지 훌쩍거린다. 가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아버지. 콩알 하나를 손바닥에 놓는다. 콩이 보이느냐, 고개를 끄덕이는 손녀. 이번에는 손을 탁 쳐서 콩을 떨어뜨린다. 책상 밑 구석으로 굴러간 무심한 콩알 하나. 콩이 어디에 있느냐. 고개를 가로젓는 손녀한테 한 말씀 하신다. 마음을 방만큼만 넓혀도 콩은 보이지 않는단다. 지붕 없는 산으로 가면 띵띵한 몸 안에 포박되었던 네모난 마음들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난다. 오늘은 좀작살나무 앞에 섰다. 그 어디로 가는 길목에서 열매가 땡글땡글하게 뭉쳤다. 나무에게도 마음이 있다면 제 마음을 이렇게 야무지게 보따리한 셈이겠다. 작살나무는 그 종류가 여럿이지만 열매는 다들 비슷해서 고즈넉한 늦가을 공중을 장악하고도 남는다.

낮에 산을 찾고 밤에 꽃을 그리는 어느 화가는 좀작살나무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적는다. “온 산에 단풍이 물들었는데 비바람에 추풍낙엽이라는 말이 실감나듯 단풍은 바람 따라 어지럽게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 가을 하늘이 코발트색으로 깊어지면 좀작살나무 열매도 더욱 아름다운 자수정 보석으로 변합니다. 낙엽은 져도 그 자리에 열매는 남아 겨울 배고픈 산새들의 먹이가 되어줍니다”(이해복). 실제 할아버지이기도 한 화가는 손녀를 지나 이제 산새들에게까지 마음을 넓히신 것일까. 좀작살나무, 마편초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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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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