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중국 전문가



항우와 유방의 천하쟁패를 다룬 <초한지>는 <삼국지연의>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애독하는 역사소설이다. <삼국지연의>가 7:3의 비율로 허구와 사실이 혼재된 소설이라면, <초한지>는 그 반대다. 이 때문에 흥미 면에서 <삼국지연의>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에 기반을 둔 스토리 전개인 만큼 실감의 정도는 <삼국지연의>를 뛰어넘는다.


<초한지>의 명장면을 들라면 수도 없지만, 그중에서 항우와 유방의 운명을 뒤바꾼 ‘홍문연(鴻門宴)’이란 술자리는 2000년 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왔고, 최근에는 이를 소재로 한 영화까지 만들어질 정도다. 홍문연은 항우가 유방을 죽이기 위해 마련한 술자리였다. 당시 천하의 형세상 연회에 가도 죽고 안 가도 죽는 상황에서 유방은 장량 등의 건의에 따라 예물을 지니고 홍문연, 아니 죽음의 술자리로 향한다.


(경향신문DB)




항우가 홍문연에서 유방을 죽이는 것은 말 그대로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항우는 정작 유방을 죽이지 못했다. 아니 죽이지 않았다. “장차 큰 화근이 될 정적”이라는 책사 범증의 충고도 무시한 채 유방을 살려서 돌려보냈다. 항우는 왜 그랬을까? 그 이유에 대해 많은 분석이 뒤따랐다. 항우의 오만함과 우유부단 및 상대적으로 노회했던 유방의 정치력을 지적하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홍문연을 기록한 사마천의 <사기>나 <초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항우의 또 다른 숙부였던 항백이란 존재가 이 세기의 술자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항백은 항우가 유방을 술자리에서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항장으로 하여금 검무를 추는 척하다가 유방을 찌르라는 범증의 의도에 맞서 자신이 직접 항장의 검무를 상대함으로써 유방의 목숨을 지킨다.


항우의 가장 가까운 피붙이 항백이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천하패권의 향방이 걸린 이 중차대한 순간에 항백은 어째서 조카를 배신하고 유방을 살려 보내게 했을까? 그 해답은 유방의 참모인 장량에게 있다. 항백은 과거 장량에게 목숨을 빚질 정도로 큰 은혜를 입었다. 그래서 조카의 의도를 밀고한 것이고, 검무까지 추어가며 유방을 지킨 것이다. 하지만 정작 항백이 살리고자 한 사람은 유방이 아니라 장량이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홍문연에서 유방이 죽게 되면 자신에게 큰 은혜를 베푼 장량도 죽기 때문이었다. 항백에게는 결정되지도 않은 천하패권의 향방보다 장량과의 의리가 더 중요했다. 개개인의 사사로운 관계가 천하패권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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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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