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

“제 생업은 땔감 장사입니다. 이번 매서운 겨울 추위에 땔감을 지고 나르던 튼튼한 소가 갑자기 빙판에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조선 후기의 공문서 서식 모음이자 공문서 작성 참고서인 <유서필지(儒胥必知)>의 한 대목이다. 민원인은 “우러러 호소”했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소를 잡게 해달라는 것이다. 관아는 다리 부러진 소는 잡되, 가죽은 관아에 바치고 고기는 팔아 송아지를 사라고 처분한다. 바로 뒤로 아픈 사람을 위해 소를 잡게 해달라는 청원서가 예시되어 있다. “의원은 ‘반드시 우황을 복용하고서야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금(牛禁) 주금(酒禁) 송금(松禁)의 세 가지 법은 실로 나라에서 금하는 것이라 감히 우황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금은 소 도축 금지령이고, 주금은 금주령, 송금은 벌목 금지령이다.

전통사회에서 소는, 농업용 축력으로 우선 중요했다. 미식은 도축의 명분이 될 수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관혼상제 및 공인된 행사용 음식, 군대와 병자를 위한 특별식 또는 약용을 명분으로 소를 잡아 유통할 수 있었다. <유서필지>가 대변한 엄격한 우금은 명절을 앞두고는 풀렸다. 사람들은 명절에 자유로이 소고기를 사 맛나게 먹었다. 그 귀한 고기 한 점, 법의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명절 분위기의 핵심이었을지 모른다. 으뜸가는 고기는 소고기였지만 안되면 닭이나 개라도 잡아 고기 냄새를 맡으려 들었다.

하지만 금령은 금령일 뿐이다. 양반과 부자는 우금을 우회할 명분을 어떻게든 찾았다. 이전에도 소개한 바 있는 김려(1766~1822)의 서사시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에는 김제의 백정 일가가 등장한다. 차곡차곡 부를 쌓아 큰아들은 읍내에 가게를 냈고, 막내아들은 푸줏간을 운영한다. 둘째는 양(소의 위)을 다루는 달인이었다. 도축에 따른 공임이 동전 스무 닢, 정형을 해주면 정형하면서 나온 고기에서 한 근을 떼어 받았다. 틈새의 정경을 김려는 이렇게 읊었다. “평소에는 백정을 사람으로 치지 않다가, 급하게 고기가 필요하면 은근히 부른다네.” 도축으로 모은 돈으로 백정 부자는 막내를 가르쳤다. 이 집 막내딸 방주는 네 살에 산수, 일곱 살에 한글, 아홉 살에 천자문을 배워 깨친다. 열 살이 되자 양반가 여성의 교양인 가사를 읊는 데 이른다. 소고기가 교양 있는 여성을 하나 길렀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다시 고기로 돌아오자. 당시 고기의 대명사는 소고기다. 백정 일의 중심도 소 도축, 발골, 정형, 유통에 있었다. 그런데 살코기만, 뚝 떼서는 장사를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소를 고기소로 키우지 않았으니 가장 부드러운 부위는 역시 양이라든지 갈비다. 배합사료의 시대가 아니니 고기의 결은 분명하고 단단하다. 그러니 전통 사회에서는 방주네 둘째 오빠의 예처럼, 양과 같은 내장을 잘 다루는 푸줏간이 인기가 있게 마련이다. 양뿐인가, 그 위로 천엽, 그 아래 창자를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양은 국거리인가 하면, 삶아 무치면 일품요리가 되었다. 천엽은 으뜸가는 전감이었다. 염통, 허파, 간, 콩팥, 등골도 귀중한 식료였다. 꼬리는 깊은 맛을 내는 국물용으로 최고였다. 우족의 젤라틴은 고급 일품요리인 우족편으로 변신한다. 소머리고기뿐 아니라 골수까지 먹어치웠고, 사골과 온갖 부위가 어울린 설렁탕, 선지를 활용한 해장국도 한 마리 다 먹는 음식 상상력을 잘 보여준다.

갈비는 탕과 찜과 구이용으로 가장 인기 있는 부위였고, 등심살은 말하자면 가장 이른 시기의 불고기 부위이다. <규합총서>에는 등심살을 넓고 길게 저며 도톰하게 손질해 칼로 자근자근 두드려 잔금을 내, 꼬치에 꿰어 기름장에 주물러 굽는 설하멱적이 등장한다. 부드러움을 배가하고, 양념을 잘 배게 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소의 창자·선지, 소고기로도 순대를 만들었다. <주방문> 속 순대 제법은 이렇다. 소 살코기에 간장, 새우젓국, 후추를 쳐 삶는다. 소의 대창을 뒤집어 깨끗이 씻고, 선지가 엉기기 전에 밀가루와 물과 매운 양념을 섞어 대창에 넣어 삶는다. 방법마다, 오로지 붉은 정육만 떼 구이 일변도로 먹는 오늘날에 견주어 훨씬 풍부한 식생활이다. 어렵게 얻은 고기, 남김없이 잘 먹자는 시도 안에 풍성한 조리의 상상력이 넘실댄다. 명절 앞두고 연 소고기, 소고기 음식 관련 문헌에서 정말 확인할 것이 다만 옛날이야기가 아님이 새삼스럽다. 정말 눈에 차는 것은 잠복한 상상력이다. 옛사람들이 고기라는 식료에 들인 조리와 미각의 집중력이다. 오늘 발현시킬 만한 미각 감수성이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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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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