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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 기안84의 사회적 약자·소수자 혐오 표현 논란에서 중요하게 부상한 맥락은 동료 창작자들의 발언일 것이다. 만화계성폭력대책위원회가 네이버 웹툰 <복학왕> 연재 중지와 소수자 보호 규정 의무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이에 대해 “투쟁해서 쟁취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거꾸로 돌리는” “가장 잔인하고 나쁜 검열”(원수연)이라거나, 최근의 분위기로 인해 “서로 검열하는 시민 독재는 더 심해질 것”이며 “창작자들의 의욕이 꺾이는 것 같다”(주호민)는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혐오 표현에 대한 대중의 거부가 창작에 대한 검열과 곧장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들은 사태의 핵심을 흐린다. 과거 국가 권력에 의한 검열과 오늘날 예술의 질적 수준에 대한 논의를 등치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허상의 구도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 대립하거나 상충하는 개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삶이냐 예술이냐’라는 이분법처럼 경직된 구도 안에서 맴돌게 만든다. 또한 창작자의 자기 검열은 나쁘다는 단순한 발상은, 창작은 아무런 압력도 없는 자유로운 허공에서 이루어진다는 환상에 근거한다. 황인찬 시인이 말했듯이 “창작은 자기 검열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행위”이며 “창작을 하는 매순간 미적 규범들을 따르거나 어기며 그것과 대결할 때, 윤리적 규범들과의 대결 또한 동시에 수행될 수밖에 없다”.

모든 검열과 자의식을 훌훌 벗어던진 순수한 상태의 창작이 애초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창작자로서는 개인적·시대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허들과 어떻게 생산적으로 길항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작품을 창작하는 어려운 과정이나 국가의 문화적 탄압을 견뎌온 만화의 역사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지난한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지켜온 가치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질문은 꼭 필요하다.

이 시점에 중요한 것은, 과거에는 국가 권력에 맞서는 저항적이고 자유로운 것으로 여겨졌던 만화계의 어떤 문화가 왜 지금은 많은 독자들에게 억압적이고 경직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묻는 일이다. 그리고 불량과 불온이라는 딱지가 붙었을지라도 국가 권력의 억압으로부터 숨통을 틔워주었던 만화계의 어떤 문화가 지금은 오히려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향유하는 방식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는지 따져보는 일이다. ‘검열 반대’라는 방패를 휘두르는 동안 동시대성과 재현 문법의 관계 등 예술의 중요한 문제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만약 동시대의 감각이 검열로 느껴져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사회적 약자·소수자에 대한 차별, 조롱, 공격 없이 무언가를 제대로 풍자하지 못하는 창작 능력을 점검해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예술계에서 관습적으로 사용되어온 혐오 표현은 예리하게 성찰하거나 풍부하게 상상하지 않은 채로 되풀이하고 있는 낡고 진부한 은유인 경우가 많다. 낡고 진부한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극히 빈곤해지는 예술 세계에서라면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은 오히려 창작자로서의 상상력과 표현력을 함양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것은 창작이 가로막힌 교착 상황이 아니라 차라리 깊어지고 있는 생산적인 상태일 수 있다. 예술은 창작자가 발 딛고 서 있는 시대와 끊임없이 교섭하며 무수한 고민의 시간을 통과한 후에야 간신히 탄생하는 산물이기 때문이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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