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해서 귀하게 대접받는 것들이 있다. 백마는 회색 털로 태어난 말이 나이 들어 노화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위용이 남달라서 고귀한 이들의 의전용 말로 사용되었다. 잎이 하나 더 달린 클로버는 돌연변이이거나 생장점에 난 상처 때문에 갈라진 것일 뿐이라지만, 흔치 않기 때문에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두 나무의 가지가 연결되어 한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 역시 어쩌다 이루어진 매우 특이한 현상이지만, 그렇기에 세상에서 보기 드문 효성이나 사랑을 표상한다.

그런데 사람의 신체에 대해서는 유독 특이한 것을 귀하게 여기기는커녕 거부하거나 멸시하는 일이 많다.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가 물갈퀴처럼 붙어 있거나 엄지손가락 옆에 작은 손가락이 하나 더 달린 것은, 비교적 작은 차이에 불과하고 일상생활에 크게 불편한 것도 아니다. 장자(莊子)는 이를 자연을 거스르는 군더더기로 보아서 인위적인 유가를 비판하는 비유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모습일 뿐이다. 단지 많은 사람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꺼림을 당하는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연암 박지원은 서얼에 대한 국가적 차별을 없애자는 주장을 담은 가상의 상소문을 썼다. 그 서두에서 하늘이 나무의 외형이 특이한지 평범한지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비와 이슬을 내리는 것을 들어서 출신의 차이에 구애되지 말고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끌어내었다. 그가 보기에 서얼의 진출을 막는 법은 정도전, 유자광 등 특정 인물로 인해 어쩌다 생겨서 권세가들의 이기심에 의해 고착된 것일 뿐, 아무런 근거도 실익도 없음이 명백하였다.

우리 시대에 공적인 적서 차별은 없다. 그러나 오늘처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화두로 떠오른 때도 없다. 이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는 순간, 차별과 배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신체적 조건, 사회경제적 조건은 물론 성별, 국적, 인종, 가치관, 행동 양식과 취향에 이르기까지, 차이를 차이로 인정하는 데에서 소통과 이해가 가능하다. 다수와 소수 역시 늘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다. 외국 출신이라서 쫓겨날 처지에 있던 이사(李斯)가 진왕(秦王)에게 한 유명한 말을 다시 음미할 만하다. “태산은 조그마한 흙덩이도 거부하지 않으므로 그처럼 커질 수 있었고, 하해는 가느다란 물줄기도 배제하지 않으므로 그처럼 깊어질 수 있었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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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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