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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 세계 도시를 달린다.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이 항구에 머물 때면 운동 삼아 근처 마을을 뛴다. 오전 일과시간을 맞추려 채비를 서두르면 이른 햇살이 비추는 코펜하겐 인어공주 동상이나 관광객의 수다가 잠잠해진 고즈넉한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을 홀로 누릴 수 있다. 그 맛이 좋아 달리기를 오래 즐기고 있다. 스페인 빌바오, 남아공 케이프타운,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인도양 세이셸에서 달렸고, 심지어 떠다니는 커다란 북극 얼음 위를 뛰기도 했다.

뛰다가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리를 달리는데, 작은 오토바이가 뒤에서 앞지르지 않고 따라왔다. 내리막이 나오자 오토바이는 엔진을 끄더니 비탈면 가속을 이용해 뛰는 무리를 천천히 앞질러 갔다. 숨이 가뿐 내게 매연을 뿜지 않으려는 배려였다. 비탈이라 봐야 조금 아래로 기운 게 전부인 편평한 나라이다 보니 오토바이와 나는 한동안 비슷한 속도로 나아갔다. 훈련하는 선수와 감독처럼 우리는 나란히 달렸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자 운전자는 찡긋 웃더니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도 종종 뜀박질하는 게 분명하다. 제가 뿜는 매연이 담배 연기만큼이나 뛰는 이에게 불쾌하다는 걸 아는 게다. 딱 한 번 일어난 흔치 않은 일이지만 기분 좋은 배려였다.

그날 나는 상상했다. 사람들이 담배 연기처럼 내연자동차 매연에 경각심 갖는 날을, 금연 구역처럼 내연차 운행 금지 구역이 여기저기 생기는 장면을 말이다. 이건 헛된 상상이 아니다. 우리는 진작부터 미세먼지 내뿜는 노후 경유차가 도심에 진입할 수 없게 하고 있다. 그걸 전체 내연자동차로 확대하는 날을 상상한다. 이미 전 세계 주요 나라는 2025~2040년 사이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2035년부터 새 내연자동차를 등록할 수 없게 하겠다 공약하고 국정과제로 세웠다. 내연자동차가 마차처럼 사라질 날이 다가온다.

서서히 내연차가 줄고, 일부로 제한된 흡연 구역처럼 내연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구역이 한정되며, 전기자동차 같은 친환경 운송수단만이 주택가에 진입할 수 있는 미래는 곧 올 테다. 그날에 내연자동차 운전자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사방으로 뿜는 매연에 겸연쩍어할 것이다.

앞을 내다보기 전에 뒤를 돌아본다. 불과 십몇 년 전만 해도 그랬다. 식당이며 노래방 안이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버스정류장이든, 건널목이든, 찻집이든, 식당이든, 심지어 집 안에서도 담배를 벅벅 피우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실내 금연 시대는 어느새 단단히 자리 잡았고, 인제 와서 보니 우리가 담배 연기 자욱한 속에서 어찌 살았나 싶다. 세상은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탄소중립은 화석 문명에서 탈탄소 문명으로 가는 ‘문명의 전환’이라 한다. 그만큼 탄소중립이 금연 구역을 넓히는 것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거대할지언정 정해졌다면 미래는 사방에 붙은 금연 구역 팻말처럼 우리 곁에 다가와 자리 잡을 테다. 이미 전기차 수요가 많아 새 차를 주문하고 1년씩 기다리는 현실 아닌가.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오토바이의 작은 배려와 사방의 금연 구역을 보면서, 탈탄소 세상에서 뜀뛰는 날을 기다린다.

김연식 그린피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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