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아 항공권을 양도한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 이후, 나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전보다는 조금 더 타인을 의식하면서 살게 됐다. 90%에 가까운 수수료를 지불하고 1만8000원을 환불받느니 차라리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자,라는 이유로 시작한 별것 아닌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학생 김민섭씨의 여행을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개인적인 일이 의도치 않게 사회적인 일로 확장되는 것을 보면서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사실 나에게 “환불받고 치킨이나 같이 시켜 먹지 뭐하는 거야”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로 인해 행복한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함께 행복해지고 싶었다. 항공권을 양도받은 누군가가 즐겁게 여행을 다녀온다면 그 과정을 지켜본 나 역시 가성비 좋은 ‘소확행’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여행을 후원한 여러 개인들 역시, 그로 인해 스스로 행복해지고 싶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선한 연대, 우리 사회의 ‘착한 일’ 중 하나가 된 듯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착한 일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표가 생겼다. 여기에 답을 하기란 쉽지가 않다.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착함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착한 일 코스프레 같은 것을 늘 목도하며 살아가고, 스스로의 착한 일 역시 잘 인식하지 못한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작은 결론은, 착해지고 싶은 존재는 사회적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 착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두 가지의 행위를 강박적으로 지속했다. 하나는 ‘아동 정기후원’이었고, 다른 하나는 ‘헌혈’이었다. 한 달에 3만원씩 특정 아동에게 돈을 보냈고 한 달에 한 번씩 헌혈을 했다. 내가 그것을 시작한 계기보다도 사실 ‘시기’가 문제였다. 나는 그때 대학원 과정생이었다.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가는 것조차 벅찼고 헌혈을 하러 갈 시간에 논문이나 더 쓰라는 핀잔도 많이 들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후줄근하다고 할 수 있을 그 시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누군가를 돕고 싶은 심정이 된 것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나는 사회적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밤새 논문을 쓰고 발제 준비를 해도 그것을 마치고 나면 몹시 허무했다. 내가 쓴 글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 스스로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일이 즐거우니까 버텨낸 것이기는 하지만, 문득 찾아오는 ‘나는 이 사회에서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슬퍼졌다. 그러던 어느 날 헌혈을 하고 나의 피를 바라보던 중, ‘저 피는 나의 글과는 다르게 누군가에게 쓰이겠구나, 그러니까 저건 사회적인 물건이구나’ 하는 감정이 찾아왔다. 아주 오랜만에 나를 사회적 존재로서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대학원을 수료하기까지 70번에 가까운 헌혈을 했다. 정기후원을 시작할 때의 사정도 비슷했다. 자매결연, 그 ‘결연’이라는 단어를 소유할 수 있음에 감격했던 것 같다.

착한 일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를 사회적으로 연결시킨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그 마음을 통해 자신이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행위는 하는 편과 받는 편 모두에게 행복과 만족을 주어야 비로소 지속될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얇고 느슨하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는 연결을 확장시켜 나간다. 그러한 착한 일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사회의 문화와 제도를 바꾸어 나가는 힘이 된다.

어느 아동과 연결되었던 날, 나는 “당신은 왜 후원을 하셨습니까?”하는 물음에 답해야 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는 “저를 위해 후원합니다”하는 한 줄을 적었다. 게시판을 살펴보던 나는 몹시 놀랐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후원의 이유에 “저를 위해서…”라고 적은 것이다. 사실 모두가 외로웠고 사회적 존재가 되고 싶었나 보다. 그날 나는 별로 외롭지 않았다. 아직 “착한 일이란 무엇인가”하는 데 대한 답을 제대로 내지는 못했지만, 타인을 상상하는 데서부터 그 일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사회적 존재로서 외롭지 않기를, 당신과 누군가의 잘됨을 바라며 행복하기를 바란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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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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