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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획수 많기로 유명한 한자 가운데 하나가 ‘鬱(울)’이다. 보기에도 빽빽한 이 글자의 뜻은 ‘잔뜩 쌓여서 꽉 막혀 있음’ ‘무성한 모양’ ‘답답함’ 등이다. 원래 갑골문은 이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숲속에 서 있는 한 사람이 엎드린 다른 사람을 짓밟는 모양이었다. 뒤에 두 사람의 모양이 부(缶)와 멱()으로 변형되었고 발음기호 역할을 하던 아래 부분이 더해졌다. 갑골문을 근거로 하면 이 글자의 앞서는 뜻은 울창함이 아니라 억울함이다.

마음의 답답함에 외부의 불공정이 더해지면 억울함이 되고 이게 쌓이면 울화가 된다. 화병이 한국어 발음대로 ‘Hwa-byung’이라는 질병으로 등재되었을 만큼 억울함은 한국 문화의 일부를 이루어 왔다. 최근 출간된 <화병의 인문학>은 전통시대에 여성과 약자만이 아니라 권력을 쥔 왕과 양반에게서도 화병이 많이 나타났다는 사실, 오늘날 다양한 사회문화 갈등에 의해 새로운 양상의 분노로 극대화하는 현상 등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경제와 과학이 몰라보게 발전한 21세기 대한민국이지만 억울함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넓고 깊어졌다. 청년과 노인, 가진 자와 없는 자, 보수와 진보, 모두가 다 억울해한다. 게다가 모든 사회활동을 멈추게 할 기세로 확산되고 있는 감염병은 불공정을 넘어 불가항력의 요인으로 우리를 억울하게 만든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먼저 생계에 직격탄을 맞고 있지만, 아직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까닭 모를 억울함이 점차 증폭되고 있다.

“우울함이 병을 만드니 이 병이 심해지면 죽게 된다.” 춘추시대 관중(管仲)의 사상을 모았다고 전하는 <관자(管子)>의 구절이다. 관중은 생기를 잃지 않으려면 “배부르도록 먹지 말고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다. 적당한 절제가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한다는 말은 온당하다 못해 식상해 보인다. 더구나 나의 행위와 무관하게 가해지는 불행으로 억울해하는 이들에게 이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놓고 분노의 대상을 찾기보다는, 우선 잠시 멈춰 그동안 당연시했던 우리의 지나친 욕망들을 헤아려 볼 일이다. 거기서 다시 억울함을 넘어 공감과 연대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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