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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경향시선

천관 (天冠)

경향 신문 2018. 9. 3. 11:25

강으로 간 새들이

강을 물고 돌아오는 저물녘에 차를 마신다


막 돋아난 개밥바라기를 보며

별의 뒤편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노을은 바위에 들고

바위는 노을을 새긴다


오랜만에 바위와

놀빛처럼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말이 없고

먼 데 갔다 온 새들이

어둠에 덧칠된다


참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참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다

 
이대흠(1968~)

언젠가 전라남도 장흥에 가서 천관산을 바라본 적이 있다. 봉우리와 기암괴석이 솟아오른 모양새가 면류관(冕旒冠)과도 같다고 해서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했다. 어느 날 해질 녘에 시인은 천관산을 마주 대하고 있었으리라. 새들은 날아 돌아오고, 서쪽 하늘에는 별이 떴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의 붉은빛이 바위를 물들였다. 시인은 바위와 마주 앉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마주 앉았다. 그러나 별다른 말은 없고, 말 없어도 의중을 알아차릴 듯하다. 이 조용한 조응은 참 근사하다. 마주앉아 서로 비춘다. 헤아림과 수긍과 보살핌이 오고간다. 그러면서 시인은 떠나가고 돌아오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아주 안 볼 듯이 떠나가도 그 자리요, ‘거기’와 ‘여기’가 멀지 않다. 모든 ‘거기’와 ‘여기’ 사이에도 아름다운 조응이 있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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