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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만에 이사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쌓아두고 살았는지 알았다. 많은 것을 정리했다. 버리고 나누고 줄였다. 물리적 공간이 줄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지만 그 결과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쯤 단순하고 명료해졌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앞으로는 딱 이만큼의 공간만을 허락하겠다. 이 정도의 짐만 지고 살겠다. 생활과 일, 마음과 감정에 관해서도 단순명료하게 유지하겠다. 그렇게 나의 미니멀 라이프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우선 인터넷 쇼핑을 최대한 끊기로 했다. 쇼핑이 쉬우니 물건도 쉽게 늘어간다는 판단에서였다. 아름답고 쓸모없는 물건들에는 최대한 눈길을 주지 말자. 굳이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을 것만 같은 생각은 아예 싹을 자르자. 당장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면 장바구니에 넣어두는 것으로 만족하자. 관심 가는 대로 주문해 보던 당일배송 책의 수도 줄이자. 대신 인근 도서관을 찾자. 새벽배송도 차단하자. 얼마나 유용하게 써먹었던가. 한밤중에 당 떨어진다 아이스크림 클릭, 새벽이면 문 앞에 도착, 당 보충하고 내친김에 아침까지 작업. 아이스크림 하나만 주문할 수는 없으니 그참에 치즈도 하나, 특가 닭가슴살도 한 팩. 그 치즈 한 달째 냉장고에 굴러다니고 있지 않은가. 저녁 무렵 산책 삼아 밖으로 나가 손에 들고 올 수 있을 만큼만 사오자. 결과적으로 자주 산책을 하게 되었고 조금 더 부지런해졌고 그 덕분에 다리에 힘이 생겼다. 괜찮은 변화였다.

하지만 완전히 끊을 수만은 없었다. 새로운 환경에는 새로운 물건이 필요했고, 그런 건 대체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땐, 인터넷 검색만 한 게 없다. 하수구 트랩을 검색했다. 그랬더니 그 이후로 온갖 하수구, 개수구, 세면대 생활용품들 광고가 뜬다. ‘너 이거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어? 그게 필요했으면 이것도 필요할 텐데?’ 페이스북이든 뭐든 온통 하수구 냄새 곰팡이 제거 고민해결사가 나선다. 요가복 검색을 했더니 누적판매 오천만장 요가복 업체 다섯 군데 광고가 다 따라붙는다.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잊기로 했던 가방은 어째서인지 브라우저를 띄울 때마다 첫 화면에 함께 뜬다. 왜 담아만 두고 안 사냐고 다그친다. ‘나 좀 봐봐, 네가 관심 있어 했잖아, 예뻐했잖아, 왜 입맛만 다시고 안 데리고 가는 거야, 난 널 위해 모든 준비가 되어 있어, 다시 돌아와.’ 빚쟁이도 이런 빚쟁이가 없다. 눈길 한번 준 것뿐인데, 잠시 눈에 담아둔 것뿐인데, 결혼하자고 떼를 쓰는 놈팽이 같다. 나 안 살 거야, 필요 없다고, 어떻게 하면 내 진심을 알아주겠니?


이사를 하면서 많은 걸 정리했다

그 결과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는 물건만이 아니라

생활·일·마음·감정에 관해서도

단순명료해지겠노라 다짐했다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인터넷을 끊었다. 전원을 꺼 두었다가 필요할 때만 연결해 쓰기로 했다. 참으로 처절하고 비굴한 방법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중독이 심했던 만큼 금단현상이 심했다. 모든 정보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그때 검색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몹시 불안하고 불편했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게 이런 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핑계를 자꾸 생각해냈다. 인터넷을 연결했다 끊기를 반복했다. 데이터를 사용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갔다. 쇼핑에 대한 금단현상인지 인터넷에 대한 금단현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미니멀 라이프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방법 아니고는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거니? 한심스러웠다.

금단의 시간이 지나고 인터넷 없이 생활하는 데 익숙해지자 고요가 찾아왔다. 검색을 줄이자 기억력이 조금 돌아온 듯도 했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늘었다.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오래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한 가지 사안에 골몰하는 시간이 늘면서 생각이 단순하고 명료해졌다. 미니멀 라이프란 이런 게 아니겠는가. 제법 부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주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새들의 다른 음색에 마음 설레고 바람소리 빗소리에 몸을 흔든다. 골목에서 들려오는 한밤중의 통화를 엿들으며 상상을 키운다. 그리고 내 몸을 깨우는 문 밖의 소리들. 골목에 울려퍼지는 확성기 소리.

“꽃게 왔습니다. 꽃게 꽃게. 게장용 꽃게 매운탕용 꽃게 무침용 꽃게를 무지무지하게 싸게 팝니다. 낙지 왔습니다 낙지. 산낙지 뻘낙지 세발낙지 횟감용 낙지가 한 마리 이천원 다섯 마리 만원. 싱싱하고 맛 좋은 제주 은갈치가 왔어요. 맛있고 싱싱한 제주 은갈치가 한 마리 천원, 열 마리 한 상자 만원. 젓갈이 왔어요 젓갈. 낙지젓 명란젓 창난젓 아가미젓 오징어젓 갈치젓 밴댕이젓 꼴뚜기젓. 법성포에서 싱싱하고 맛있는 영광굴비를 가지고 왔습니다. 지금 바로 방송 중인 차량으로 오셔서 구입해 가시기 바랍니다.”

나는 왜 자꾸 확성기 소리를 받아 적고 있는가. 왜 그 소리가 멀어질까 전전긍긍하는가. 그리고 지금 저 밖에 매달려 있는 한 두름의 법성포 굴비는 언제 다 구워 먹을 것인가. 내 미니멀 라이프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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