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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도 그렇게 뭘 먹이려 들더니 결국 식당을 차렸구나, 내 이럴 줄 알았다. 식당을 찾아온 친구가 자리를 잡고 앉기도 전에 실내를 한번 쓱 둘러보며 말했다. 말끝에 츳츳 혀 차는 소리가 붙었는데, 수긍인지 질타인지 그 심중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고기 얘기가 좀 나오긴 하지. 딴청을 피우며 자리로 안내했다. 좀이 아니지, 하물며 도망자한테 닭백숙을 차려주잖아, 토종닭. 어디 그뿐이야? 그녀는 머릿속에 막 떠오르는 장면을 몇 개 더 읊었다. 나도 가물가물한 장면 장면들을 많이도 기억해냈다. 이상하게 추궁받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은 그저 과정이었을 뿐, 결국 네가 도달하고 싶었던 곳은 바로 여기가 아니냐고, 지금 내가 대고 있는 게 증거고 근거이니, 인정하라고. 함께 왔던 지인도 가세하고 나니, 들고 있던 메뉴판이 무색할 정도로 많았다. 결국 그녀는 메뉴판을 한쪽으로 밀치며 주문을 넣었다. 그래, 뭐가 맛있어? 내가 뭐 알아야지, 네가 주는 대로 먹을게. 아, 이 요상한 기분은 뭐지?

그녀의 말대로 나는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먹여왔다. 문신을 마치고 난 다음 핏물이 뚝뚝 흐르는 생고기를 먹였고, 무릎이 아픈 할멈에게는 소뼈와 내장탕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에겐 매운 돼지고기찌개를 먹였다. 첫 몽정을 한 소년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려주고, 빚을 떠안기고 도망가려는 애인에게는 게살죽을 밀어 넣었다. 음식이나 요리를 서사의 중심축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빠짐없이 먹는 장면이 나왔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뭔가를 먹이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그녀의 말대로 결국 식당을 차리려고 그렇게 소설 속에서 한풀이를 했던 것일까. 나는 왜 그랬을까. 나도 궁금했다. 무언가를 해 먹이는 일과, 소설을 쓰는 일에 대해. 누군가를 위해 내가 차려낸 밥상과, 나에게 차려준 누군가의 밥상을 생각했다. 어떤 것은 따뜻했고, 어떤 것은 슬펐고, 어떤 것은 풍요로웠다. 그렇게 기억을 거스르다보니, 하나의 기억이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다.

미순 언니는 아버지 공장에서 삼년간 일한 고학생이었다. 내게는 좀 특별한 사람이었는데, 여자형제가 없는 나로서는 친자매처럼 좋아라 따르는 언니였고, 한편으로는 나와 대적할 수 있는 공장의 유일한 경쟁 상대이기도 했다. 공장일이라면 여섯 살 때부터 보고 배운 바가 있어 최고의 숙련공이라고 자부하던 나조차도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드는 빠른 손과 정확성. 하염없이 수다나 떨며 시간만 때우려는 아줌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줌마들은 종종 나와 그녀의 대결을 부추기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미순 언니에게 아슬아슬하게 지곤 했다. 그래서 나를 안달 나게 만드는 상대이기도 했다.

내가 왜 그녀를 이길 수 없었는지는 그녀의 집에 가서 알았다. 초대를 받았다기보다는 막무가내로 쫓아간 것이었다. 조금 난감해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 나이 때 계집애들이 친구 집에 몰려가 노는 일은 흔했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비탈길을 오르고 골목을 돌고 돌아 도착한 집. 변변한 부엌도 욕실도 없는 허름한 방 한 칸이었지만 정돈이 잘되어 있었고, 언니들의 세계를 훔쳐보는 재미에 흠뻑 젖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저녁 먹고 갈래? 그녀가 묻기 전까지는 배고픈 줄도 몰랐다. 물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아랫목에 넣어 둔 밥그릇과 찬장의 반찬들을 꺼내 상을 차렸다.

반찬들을 다 내놓고서도 허전했는지 선뜻 상을 내밀지 못하던 그녀가 쌀독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계란 두 개. 잠깐 망설이더니 계란 한 개는 다시 쌀독에 넣었다. 계란 프라이를 마지막으로 그녀의 밥상이 완성되었다. 밥상 앞에 앉았을 때 내가 물었다. 계란을 왜 쌀독에 넣어놓는지. 특별할 때만 먹으려고. 그녀가 대답했다. 그런데 왜 하나만 꺼내? 나는 오늘 아침에 먹었으니 안 먹어도 돼. 계란이 비싼 음식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는 쌀독에 넣어놓고 아껴 먹는 별식이라는 것. 내가 온 것이 특별한 일이라는 것. 나도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것. 기분이 썩 괜찮았다. 즐겁게 계란 프라이를 한 조각 떼어 입에 넣었다. 그런데 그녀가 덧붙인 말에 더 이상 씹을 수가 없었다. 너는 사장 딸이잖아.

맞는 말이었다.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 내 아버지이니 아버지가 사장이고, 그 아버지의 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나는 사장 딸 맞다. 내가 그녀에게 특별한 것은 유일한 경쟁상대이거나 친동생 같은 존재여서가 아니었다. 나는 사장 딸이라서 특별했고, 그래서 특별히 계란을 꺼낸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내가 그녀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함께 일을 하긴 했지만, 나는 가끔 일을 도와주고 용돈을 받는 처지이고, 그녀는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처지였다. 나는 작업능률이 좋지 않다고 고용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그녀는 작업능률이 좋은 훌륭한 일꾼이라는 걸 각인시켜야 했다. 나는 대결을 벌이며 즐거워했지만, 그녀는 대결을 벌이며 불안했을 것이다. 나는 어쩌면 그녀를 위협하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존재. 껄끄럽고 부담스러운 존재, 내가 그녀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특별함이었다. 내가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질 수밖에 없었던 비밀이 거기 있었다. 그날 내가 미순 언니 집에서 먹은 계란 프라이의 맛은 좀 복잡했다. 억울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거기에 뒤따라오는 이상한 우월감. 어떤 감정이 먼저이고 어떤 감정이 뒤따라온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종종, 어쩌다 소설을 쓰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오래전 먹었던 미순 언니의 계란 프라이의 맛을 떠올리곤 한다. 그 맛을 기억하기 위해, 그 복잡한 맛의 비밀에 닿기 위해, 소설이라는 다른 도구를 선택한 것이라고. 또 종종, 어쩌다 식당을 차렸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에는, 그저 누군가에게 밥을 해먹이고 싶다거나, 다른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답하곤 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친구의 말이 왜 질타와 추궁으로 들렸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선언을 했다. 여기까지. 밥은 차릴 만큼 차렸으니 되었다. 근육인지 흉터인지도 여기까지. 돌아간다, 그곳으로. 그 특별하고도 복잡한 계란 프라이 맛의 비밀은 아직 풀지 못했으므로.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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